‘5·18 민주화운동’ ‘지하철 참사’ 등 아픈 역사까지 조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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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지방혐오 리포트] ① 뉴스 댓글 빅데이터 분석

지난 1년간 네이버 뉴스의 지방혐오 댓글 2만 3589건을 분석해 워드 클라우드로 표현했다. 청록색이 전라도, 붉은색이 경상도, 노란색이 지역 전체, 검은색이 서울·경기·충청·강원 등 기타지역.

온라인에서 범람하는 지방혐오는 특정 지역에 대한 멸시와 모욕을 가득 담고 있었다. 폭동, 홍어, 통수, 쌍도, 과메기, 통구이 등이 대표적이다. 전라도를 향한 혐오가 눈에 띄게 많았고, 5·18 민주화운동이나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등 아픈 현대사를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다. 뿌리 깊은 지방혐오의 실태를 파헤쳐 본다.


지역 키워드 포함 네이버 뉴스
댓글 280만 건 추출해 분석
폭동·라도·홍어·통수·7시 등
상위 10개 중 9개 전라도 모욕
쌍도·붓싼·스까·노인과 바다 등
경상도·부산 혐오 양상도 뚜렷



■전라도 겨누는 혐오의 칼날

<부산일보>와 부경대 지방분권발전연구소는 온라인에서 폭증하는 지방혐오의 민낯을 들춰내기 위해 2020년 7월 1일부터 올 6월 31일까지 1년간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 뉴스에 달린 댓글을 수집·분석했다. 온라인상의 지방혐오 실태를 확인하기 위한 빅데이터 분석은 국내 최초다. 이를 위해 부산, 광주, 대구, 경상도, 전라도, 서울 등 6개 키워드를 포함한 기사 6만 4319건을 무작위 선정했고 279만 9351건의 댓글을 추출했다. 혐오표현은 국가인권위원회 자료와 각종 선행연구를 참고해 190개를 정했다.

이렇게 추출한 댓글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혐오표현은 ‘폭동’(3024회)이었다. 5·18 민주화운동을 격하하며 광주 지역을 모욕하는 혐오단어다. 폭동의 뒤를 이어 라도(2856회), 홍어(2623회), 시골(2458회), 통수(2000회), 7시(1990회), 뒤통수(1329회) 등이 많이 언급됐다. 지방혐오 표현 상위 10개 중에 지역 전체를 비하하는 단어인 시골을 제외하고 나머지 9개는 모두 광주나 전라도를 모욕하는 단어였다.

전라도를 향한 혐오는 정치권에 의해 뿌리내렸고, 5·18 민주화운동 등 현대사의 주요 사건으로 폭증했다. 부경대 차재권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경부축의 정치 엘리트들은 기득권을 확대재생산하기 위해 전라도민을 규정하고 혐오하는 허구적 의식을 만들어 냈다”며 “국가 자원을 경부축으로 배분하면서 전라도에 대한 혐오적 인식을 확대했고, 이에 따른 심리적 보호 기제로 전라도민들은 호남 중심의 공동체 의식으로 똘똘 뭉치게 됐다”고 말했다.

경상도나 부산, 대구의 경우 쌍도(457회), 붓싼(109회), 과메기(94회), 노인과 바다(78회), 똥푸산(68회), 통구이(55회) 등의 혐오표현이 확인됐다. 전라도보다 빈도는 적고 강도는 약했지만, 다른 시·도와 비교하면 혐오 양상이 뚜렷한 편이었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제외하면 촌놈(지역 전체 313회), 지잡대(지역 전체 268회), 노잼(충청도 82회), 이부망천(인천 74회), 서울촌놈(서울 59회) 정도가 관찰됐다.



■트라우마에 기생하는 지방혐오

지방혐오 표현이 온라인상에서 어떤 맥락으로 사용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언어 네트워크 분석(SNA)도 실시했다. 혐오표현이 담긴 댓글 문장에서 함께 언급된 단어는 무엇이고, 이런 단어들이 어떤 상관관계를 맺는지 분석한 것이다. 지방혐오는 해당 지역의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사건사고와 트라우마를 매개로 기생하며 그 위세를 확장했다.

광주를 대상으로 한 혐오표현은 5·18 민주화운동과 직결됐다. 광주라는 키워드와 가장 맞닿아 있는 혐오표현은 폭동으로, 광주와 폭동은 2202회나 함께 사용됐다. 폭동은 민주(1068회), 운동(676회), 국민(550회), 유공자(398회) 등으로 연결되며 혐오를 확장해 나갔다. 이러한 표현은 전두환, 김대중, 북한, 정권, 빨갱이 등 시대의 정치상황을 반영하는 단어들로 퍼져 나갔다.

경상도의 경우 쌍도, 과메기, 통구이 등 3개의 혐오단어가 주로 등장했다. 이들 혐오단어는 대구(210회), 경상도(207회), 국민(86회), 부산(64회) 등과 연결돼 있었다. 경상도에서 부산보다 혐오의 비중이 높은 대구는 통구이, 과메기와 같은 혐오단어와 연관됐다. 특히 통구이는 지하철과 깊은 연관성을 보였다. 통구이는 2003년 200명에 가까운 목숨을 앗아간 대구 지하철 참사를 욕보이는 용어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 이를 조롱하려는 일부 네티즌이 사용한 것이다.

코로나19 초기 신천지 사태 등으로 아픔을 겪었던 대구는 코로나라는 키워드와도 자주 언급됐다. 부산을 분석한 결과 스까(무엇이든 섞어 먹는다는 뜻의 부산 비하 단어), 노인과 바다, 똥푸산 등의 혐오단어가 등장했다. 스까를 중심으로 변이, 바이러스, 확진, 유입 등 코로나 관련 단어가 연결됐다.



■개인을 넘어 지역의 특징으로

이번 분석은 190개 혐오표현을 미리 선정한 뒤 뉴스에서 혐오표현이 포함된 댓글을 크롤링(수집)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다 보니 온라인에서는 횡행하지만 측정이 어려운 일부 혐오현상이 제외됐다. 대표적인 것이 지역의 이름을 단순히 명기하는 혐오다. '경상도가 경상도했다.' '까고 보니 광주더라.' '전.라.도.'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이 같은 댓글은 주로 사회 분류의 사건사고 기사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특정 개인의 범죄나 지역의 특성과는 관련 없이 발생하는 사고에서 ‘역시 그 지역이라서 발생했다’는 식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해당 지역민의 폭력성이나 몰상식함이 이번 범죄로 인해 다시 한번 증명됐다는 식으로도 쓰인다.

전남대 양혜승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겉으로 보기에는 중립적인 단어이지만 문맥상 혐오 표현인 경우가 굉장히 많다”면서 “전라도에서 발생한 사건 기사에 ‘전라도’라는 짤막한 댓글이 달려도 맥락상 혐오로 간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특정 커뮤니티를 위주로 뉴스를 접할 경우 확증편향적 사고로 인해 지방혐오를 내재화할 가능성이 높다.

부산대 임영호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사회적 권력 측면에서 소외된 집단을 상대로 한 혐오에서 부정적 태도가 강화된다”며 “대구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할 때마다 ‘또 대구’라고 생각하는 현상은 앞서 그런 내용을 접한 데 따른 확증편향”이라고 말했다. 안준영·손혜림 기자 jyoung@busan.com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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