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엑스포 스토리 ⑧] 파리 엑스포는 에펠탑… 시애틀은 명물 ‘스페이스 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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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주의 최대 도시 시애틀. 이 도시를 머릿속에 떠올리면, 대개 ‘스타벅스 1호점’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본사, 세계 최대 항공기 제작사 보잉의 대규모 공장, 혹은 연어가 돌아오는 아름다운 태평양과 자연이 펼쳐질 것이다.

그에 더해 낭만적인 도시 시애틀의 랜드마크 ‘스페이스 니들(Space Needle)’을 빼놓을 수 없다. 이름 그대로 뾰족한 철탑 위에 우주선이 얹힌 모습을 한 스페이스 니들은 파리 에펠탑처럼 1962년 시애틀 엑스포가 낳은 역사적 산물이다.

뾰족한 철탑 위 우주선 얹힌 모양
높이 185m 도심 한가운데 위치
미·소 우주 경쟁의 산물로 탄생
엑스포 전체 비용 절반 쏟아부어
과학 호기심 빌 게이츠, 매일 방문

1957년 10월, 미국은 충격에 휩싸였다. 치열한 냉전 도중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한 것이다. 미국을 제치고 우주를 향해 질주하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1958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창설됐다. 첨단 과학 기술을 세계에 알리는 게 절실했던 미국은 작은 도시 시애틀에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시애틀이 1909년에 열린 알래스카 유콘 퍼시픽 박람회 50주년을 기념하는 작은 박람회를 준비 중이었기 때문이다.

1959년 미국 정부는 시애틀 엑스포 개최를 공식 선언했다. 지역 행사가 국가가 주도하는 월드엑스포로 격상된 것이다. 시애틀 엑스포는 우주 경쟁을 의식해 ‘21세기 엑스포’라는 이름을 달았고, 개·폐막일도 1962년 4월 21일부터 10월 21일까지로 정했다. 국제박람회기구(BIE) 공인을 위해 2년에 걸쳐 성대하게 열려던 계획을 6개월로 축소한 것이다.

하지만 시애틀 엑스포는 세계 49개국과 국제기구 4개가 참여한 절반의 월드엑스포였다. 소련과 유럽 동구권 국가, 중국, 베트남 등 여러 나라가 참여를 거부했다. 시애틀엑스포 막바지에는 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뻔했던 ‘쿠바 미사일 사태’까지 벌어졌다.

어쨌든 시애틀 엑스포는 전체 비용의 절반인 900만 달러를 스페이스 니들 건설에 쏟아부었다. 미국의 우주 탐험 의지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높이 185m인 스페이스 니들은 존 그레이엄이 설계한 철골 구조물로, 엑스포 개최로 도심 재생을 노린 덕에 도시 한가운데 세워졌다. 꼭대기 우주선 모양의 공간은 300명 규모 레스토랑과 360도 회전 전망대로 채워졌다. 엑스포 당시 레스토랑 종업원들은 우주복을 입었다.

사실 스페이스 니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제대로 된 첫 엑스포였던 1958년 벨기에 브뤼셀 엑스포의 상징물 ‘아토미움(Atomium)’의 영향을 받았다.

평화와 인간성 회복을 내세운 브뤼셀 엑스포는 철의 원자 구조를 1600억 배 확대한 110m 높이의 거대한 철 구조물 아토미움으로 원자력이 평화를 위해 쓰이길 희망했다. 쇠구슬 같은 9개의 구조물에 전시 공간을 만들었고, 구조물을 연결한 꼭대기 공간에서 전망대를 겸한 레스토랑을 운영했다. 엑스포 부지 어디서든 관람객을 압도하는 아토미움은 브뤼셀의 명소가 되었고, 에펠탑 이후 가장 인상적인 엑스포 상징물로 남았다.

시애틀 스페이스 니들의 기본 구상은 조직위원장이었던 에드워드 칼슨이 냈다. 그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타워의 레스토랑을 방문했다가 떠오른 아이디어를 종이 냅킨에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스페이스 니들 역시 초기에는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품는 여론이 일었다. 토지와 건축 비용이 예산에 포함되지 않아 민간 프로젝트로 진행해야 했다. 호텔 벨보이 출신으로 웨스턴 인터내셔널 호텔 부사장이었던 칼슨은 지역의 반대를 뚫고 민간 기금 모금과 기업 참여를 이끌어 냈다. 법인을 설립해 엑스포 부지 1300㎡를 극적으로 사들이게 됐다. 그렇게 스페이스 니들은 엑스포 개최 불과 1년을 앞두고 공사에 들어갔다.

엑스포 기간 중 스페이스 니들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관람객은 275만 명이었고, 레스토랑에는 긴 줄이 이어졌다. 스페이스 니들 투자금을 회수하는 데는 7~9년이 걸렸다.

스페이스 니들이 상징하는 시애틀 엑스포는 1955년 시애틀에서 태어난 소년 빌 게이츠에게도 큰 영향을 줬다. 그는 시애틀 엑스포 전시관에 거의 매일 달려가 과학적인 호기심을 풀며 많은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진다. 마이크로소프트 본사는 여전히 시애틀 권역인 레드먼드에 있다.

시애틀 엑스포는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1900년 파리 엑스포 참가 이후 엑스포에 참가하지 못했던 대한민국은 6·25 전쟁의 상흔을 딛고 1962년 시애틀 엑스포부터 참가를 했다. 당시 한국관에는 농산품과 놋쇠, 칠기, 섬유 제품 등 공산품 800점이 전시됐다.

‘세계의 대전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항해’를 표방한 2030 부산월드엑스포 역시 민간 유치위원회에 재계 5대 그룹이 공동 부위원장으로 참여하면서 유치 열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민관이 손을 잡고 시애틀의 스페이스 니들, 브뤼셀의 아토미움을 능가하는 부산엑스포의 상징물을 탄생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공동 기획: (사)2030부산월드엑스포 범시민유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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