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푸대접’도 모자라 ‘혐오·비하’ 마구 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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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75주년 기획] 2021 지방혐오 리포트

시나브로 지방소멸의 시대다. 지난해 수도권 인구가 처음으로 비수도권 인구를 넘어섰고, 지역총생산(GRDP) 격차는 10%포인트 넘게 벌어졌다. 국토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으로 인구, 자본, 문화 등 모든 무게추가 기울어진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국토균형발전 ‘떡고물 배분’ 전락
수도권 일극주의에 ‘소멸의 길’
‘이건희 기증관 서울행’은 서막
인터넷 등 도처에 차별적 시선
코로나19로 엇나간 인식 심화

그러나 여전히 한국의 국토균형발전은 ‘떡고물 나눠주기’의 구태를 못 벗어난다. 정부는 공공기관이나 공업단지, 철도, 도로 따위의 인프라를 선심 쓰듯 나눠주고, 지자체는 떡고물을 더 받아먹기 위해 납작 엎드린다.

인프라의 불균형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지역을 바라보는 비뚤어진 인식이다. 수도권 일극주의가 당연시되고, 지역과 지역민은 수도권에 편입하지 못하는 열등한 존재라는 인식이 굳어지면 그나마 남은 떡고물 나눠먹기의 길도 막힌다. ‘국익’을 최우선 가치로 둔다던 이건희 기증관이 지역의 요구를 뿌리치고 서울로 향한 것은 서막에 불과하다.

‘서울 사람이 바라보는 한국지도’라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이 한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부산은 해운대, 제주는 감귤, 대구는 대프리카 등으로 표시하고, 나머지 대부분 국토를 ‘지방’으로 명기한 지도였다. 그저 웃어 넘기기에는 지역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깔린 혐오가 도처에 넘쳐 난다.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이를 ‘재미’로 받아들이는 청소년과 청년층마저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지방혐오를 내재화하는 상황이다.

지방에 대한 혐오와 비하, 차별은 현재진행형이다. 경상도와 전라도가 갈라져 서로를 헐뜯는, 1970~80년대 군사정권이 만들어낸 갈등만이 지방혐오가 아니다. 비수도권 도시들의 개성을 모조리 박탈하고 ‘시골’이나 ‘촌’으로 내려다보는 서울 중심적 시각, ‘밈’(온라인상에서 공유되는 유행어, 사진, 영상)으로 전락한 지방을 향한 조리돌림, 한낱 놀림거리가 돼 버린 사투리, 지역민이 스스로나 다른 지역을 비하하는 세태 등 새로운 형태로 지방혐오는 진화한다.

는 부경대 지방분권발전연구소와 함께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인 네이버 뉴스에 1년간 달린 댓글 280만 개를 놓고 빅데이터 분석을 했다. 지방혐오 표현이 담긴 댓글 2만 3000개를 추출해 언어 네트워크 분석(SNA)과 토픽 모델링 분석 등으로 들여다봤다.

5·18 민주화운동, 대구 지하철 참사 등 지역의 트라우마에 기생하며 기세를 확장하는 지방혐오는 코로나19 사태로 또 한번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지방혐오는 융합하거나 분열하며 쉼없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냈고, 지역민에 대한 비상식적인 규정짓기를 자행했다.

앞으로 6차례에 걸쳐 보도되는 ‘2021 지방혐오 리포트’에서는 일상 속에 스며든 지방혐오의 실태와 특정 지역 출신을 향한 고착된 편견, 지역민마저 외면하는 사투리, ‘수도권 역차별’을 바라보는 엇나간 시선 등을 파헤칠 예정이다.

이번 분석을 함께 진행한 부경대 차재권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수도권과 지방을 우열의 잣대로 나누는 비뚤어진 인식은 수도권 일극주의를 가속하는 촉매”라며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는 지방혐오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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