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국가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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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나 자막, 배경음악도 필요 없었다. 그야말로 심플한 10분짜리 영상이 감동을 선사했다. 공군이 올린 ‘미라클 작전’ 출발 및 임무 수행 영상은 이틀 만에 조회수 130만과 댓글 4600개를 돌파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인 한국 정부 협력자와 가족 390명의 전원 입국 성공이라는 미라클의 시작은 부산이었다. 전술수송기 2대와 공중급유기 1대는 김해공항에서 은밀하게 날아올랐다. 공군 특수부대 CCT(공정통제사) 대원들이 지친 어린이에게 부채질까지 해 주는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마스크를 씌워 주면서 힘내라고 엄지 척을 하는 장병들, 정말 엄지 척이었다.

카불 공항 폭탄 테러로 인한 사망자만 170명이 넘는다. 이송 작전이 며칠만 늦어졌더라면 작전은 실패와 함께 자칫 대형 인명 피해가 날 수도 있었다. 한국 정부는 수년 전에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했던 아프간 직원에게까지 탈출 의사를 물어봤다고 한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끝까지 친구를 버리지 않는 모습을 세계에 확실히 보여 줬다.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자부심도 커졌다. “내가 위험에 빠져 있을 때 정부가 구해 줄 거란 믿음이 더해진다”라는 댓글이 눈에 많이 띄었다.

탈레반이 재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 탈출해 피난길에 오른 난민이 이미 200만 명에 달한다. 한국에 온 특별기여자의 직업은 주로 의사, 간호사, 정보기술(IT) 전문가, 통역, 강사, 행정 등 전문인력이다. 삶의 절반은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소설가 할레드 호세이니가 2003년에 쓴 <연을 쫓는 아이>는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에게 바칩니다”라는 글로 시작된다. 그는 이번 사태에 대해서도 “아프간인을 구출하는 것은 우리의 도덕적 의무”라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하고 있다. 법은 강제 규범, 도덕은 자율 규범이라는 차이가 있다.

전쟁으로 원조를 받던 빈국에서 다른 나라의 국민을 구하는 선진국으로 어느새 성장한 우리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본다. 나름 괜찮지만 아직은 성에 차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훌륭한 국가는 우연과 행운이 아니라 지혜와 윤리적 결단의 산물이다. 국가가 훌륭해지려면 국정에 참여하는 시민이 훌륭해야 한다. 따라서 시민 각자가 어떻게 해야 스스로가 훌륭해질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미라클 작전’을 두고도 입국 반대 청원이 등장하는 등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더 품격 있는 국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일까 생각한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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