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대단히 잘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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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돈 편집부장

“공적 성격을 가진 모임이라 판단해 참석했지만 다른 곳에서 식사를 먼저 하고 갔기 때문에 해당 모임에서는 식사를 하지 않았다. 방역 수칙을 꼼꼼히 지키지 못한 점,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박형준 시장이 감염병예방법 위반 논란에 대한 ‘입장문’이라고 기자들에게 알린 내용의 요지다. 논란의 핵심은 알려진 대로다. 6월 19일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의 서울 집에서 14명이 식사모임을 했다. 모임은 홍 회장 부인인 이운경 씨 초대로 이뤄졌는데, 홍 회장 집 가사도우미의 경찰 고발로 알려졌다. 그 자리에 모인 14명 중에는 박형준 부산시장도 있었다.

박형준 시장 휴무일 ‘서울 출장길’
아트부산 ‘공적 모임’까지 강행군
시민에 알리지 않은 것 대단히 잘못

감염병예방법 위반 논란 두고는
달랑 ‘대단히 송구’ 입장문 하나
공개 사과 않는 것도 대단히 잘못



서울에서 열린 이운경 씨 주최 모임에 부산시장이 왜 참석했을까? 궁금증은 입장문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됐다. 이 씨가 매년 부산에서 열리는 ‘아트부산’ 조직위원장을 2년째 맡았다는 것이다. 올해는 5월 14일부터 사흘간 열렸다. 입장문은 이에 대해 “행사를 성황리에 마친 후 해외 참여자들의 간단한 평가와 함께 감사 인사를 전하는 자리가 마련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서울 출장길에 부산시장으로서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참석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박 시장의 이후 행보는 모든 논란이 정리된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시민단체 몇 곳과 여당의 비판 성명이 발표되기도 했지만 박 시장의 대응은 일절 없는 상황이다.

부산시 방역 수장 박형준 시장의 감염병예방법 위반 논란은 일단락된 것일까. 먼저 저잣거리에서 떠도는 ‘거짓 해명’ 논란부터 짚고 넘어가자. 입장문에서 밝힌 ‘출장길’과 ‘공적 성격 모임’이라는 표현에 관한 것이다. 부산시홈페이지에는 시장 전용 공간이 있다. 이곳에는 취임사부터 주요 공약, SNS 계정, 그날그날의 일정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다.

서울 모임이 있던 6월 19일 일정표는 비어 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공적 성격을 가진 모임이라 판단해 참석했지만’ 휴무일인 토요일까지 업무에 시달린다는 것을 굳이 알리지 않으려는 박 시장의 의도가 담긴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박 시장은 14명 모임을 ‘서울 출장길’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상식선에서 생각해 볼 때, 휴일을 맞아 개인 용무차 서울에 간 것을 굳이 ‘출장길’이라고 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거짓말을 한 것일까? 부산시민으로서 ‘합리적 믿음’을 발휘해 보자면 시장이 거짓말을 했을 리 없을 것이다.

그러니 결론은 이렇다. 토요일이었던 6월 19일, 휴무일을 반납하고 서울 출장길에 나선 박 시장은 시간을 쪼개 남양유업 회장 부인이 마련한 14명 저녁 식사 모임까지 참석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그 자리에서 박 시장은, 아트부산 성공에 기여한 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공적 성격의 업무’를 수행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일정표에는 여전히 박 시장의 노고가 반영되지 않고 있다. 담당 직원의 게으름을 타박할 생각은 없지만, 지금이라도 공란을 채우는 게 상사의 거짓 해명 논란을 정리하는 길이다. 일정표에는 ‘14명 식사 모임’ 참석과 ‘서울 출장길’에 나서게 한 공적 업무 2가지가 담겨야 할 것이다. 관련 보도자료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꼼꼼히 작성해 올려야 한다. 시장의 공무 출장은 부산시정의 한 페이지라는 사료적 가치도 있으니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대단히 송구스럽다’는 입장문 하나 내고 손 놓을 문제가 아니다. 대단히 잘못했다.

감염병예방법 위반 논란에 대해서도 얘기해 보자.

박 시장은 마침 ‘서울 출장’ 하루 전인 6월 18일 오후 1시 47분 코로나19 방역 관련 게시물을 SNS에 올렸다. 부산의 백신 접종자가 100만 명을 넘기면서 인구수 대비 접종률이 30%를 넘었는데, 이는 6개 특·광역시 중 가장 높다는 내용이다. 박 시장은 이어 코로나와 더위로 이중사투를 벌여야 하는 보건직공무원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며 감사와 격려의 뜻을 전했다. 이들의 고충을 덜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까지 덧붙이면서.

시간순으로 정리해 보면, 금요일 점심 식사 후 특·광역시 1등을 달리는 백신 접종률을 자축하며 직원들을 격려하는 SNS 게시물을 올린 박 시장은 정작 다음날 서울 출장길에 올라 14명이 모인 가정집 저녁 행사까지 소화했다. 당시 수도권에서는 5인 이상 사적 모임이 금지되고 있었다.

앞뒤가 안 맞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왜 즉각 공개 사과를 하지 않았을까. 인간적으로 ‘합리적 믿음’을 한번 더 발휘해 보자면, 예상 못 한 상황이 당혹스럽고 부끄러워서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래도 ‘송구스럽다’는 입장문 하나 내고 끝낼 일은 아니다. 대단히 잘못했다. happy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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