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막걸리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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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6월 15일 ‘막걸리 빚기’가 국가무형문화재 제144호로 등재됐다. 서민의 술이라던 막걸리가 나라의 보호를 받을 정도로 격이 높아진 셈이다. 정부와 업계는 내친김에 최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에도 나섰다. 현재 술과 관련해 유네스코에 등재된 인류무형문화유산은 조지아의 고대 크베브리 와인 양조법과 벨기에의 전통 맥주 문화, 둘 뿐이다. 일본이 사케 등재를 추진 중이라 막걸리와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

막걸리 판매량도 근래 크게 늘어나고 있다. 편의점 CU의 올해 상반기 막걸리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52% 늘었다고 한다. 또 다른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서도 올해 1~7월 막걸리 매출이 전년에 비해 35% 증가했고, 특히 20대의 막걸리 매출이 46% 넘게 늘었다고 알려졌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2012~2016년 3000억 원 수준에 불과했던 국내 막걸리 소매시장 규모는 지난해에는 5000억 원 대로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늘어난 ‘홈술족’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막걸리가 저렴하면서도 몸에 좋은 술이라는 인식이 퍼진 덕으로 분석된다.

막걸리를 즐기는 세대만이 아니라 막걸리 자체도 젊어지고 있다. 프리미엄 막걸리는 이미 오래됐고, 거기에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이색 막걸리가 쏟아지고 있다. 바닐라 커스터드를 섞어 만든 ‘막걸리 셰이크’를 비롯해 막걸리빵, 과자 맛 막걸리도 나왔다.

분명 반가운 현상이다. 그러나 씁쓸한 점도 있다. 옛날 막걸리는 오래 두면 속의 유산균이 2차 발효를 일으켜 식초가 된다. 막걸리 식초는 얼굴에 바르면 따로 화장품이 필요 없고, 무침 요리에 넣으면 상큼한 감칠맛이 일품이다. 물에 희석해 마시면 숙취가 말끔해진다. 하지만 시중의 요즘 막걸리는 대부분 오래 둬도 식초가 되지 않고 상해 버린다. 합성감미료 등 인공 성분이 많이 들어간 탓이다. 합성감미료가 들어가고 일본식 ‘입국’을 사용하기 때문에 우윳빛에 단맛이 난다.

전통 밀 누룩을 사용해 진한 볏짚 색을 띠고, 시큼하면서도 입안을 꽉 채우는 묵직한 맛이 나는 막걸리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밀 누룩만을 이용한 막걸리는 만들기 어렵지만, 대신 제법 많이 마셔도 몸에 큰 무리가 가지 않는다. 달달하고 가벼운 막걸리가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걸쭉하고 시큼털털한 막걸리를 찾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프리미엄 막걸리가 아니라 ‘탁배기’를 마실 권리도 있어야 한다. 어찌 아이들 입만 입일 수 있는가.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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