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파도 2 / 이윤길(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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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장된 관절이 부러지고

재촉하지 않아도 바다는

철썩이는 죽음의 춤사위로

뱃사람 검은 목에 만장을 건다



부서져 날리는 물결무늬

시퍼런 난바다 물비린내는

폭풍에서 흔들린 어느 조난처럼

저녁노을처럼 수평선을 장악했다



흘수표를 점령한 물보라

건현과 뱃머리를 넘어 선실로

밀려들어 가슴을 적신다 나는

그 시퍼런 물방울을 담아낸다



파도다



- 시집 (2021) 중에서-
누군가에게 파도는 바위처럼 꿈적 않는 임을 향한 아쉬움이며, 누군가에게 파도는 바다의 자장가이다가 육지를 향한 그리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윤길 시인에게 파도는 삶과 죽음의 현장이다. 그에게 파도는 용왕의 심술이다가 태풍이 던져주는 화두이다가 돈오의 방점이며 바다의 꽃술이다. 또 그에게 파도는 근성 없이 배 타는 놈을 작살내는 시퍼런 뱀파이어이다가 죽은 선원들의 울부짖는 비명이기도 하다. 그리고 밥과 옷과 가족을 위해 다가간 바다는 이제 물고기 목에 칼을 겨누는 수탈의 장소가 되었고 이윤길 시인 스스로 그 바다의 파도가 되어간다. 관습에 따라 살고 규칙에 따라 죽는 뱃사람의 운명을 보면서 이제 그에게 파도는 바다가 사람을 만나고 바다가 사람과 헤어지는 방식이다. 김성식 선장 시인이 떠난 부산 해양문학의 빈자리에 성난 파도처럼 이윤길 시인이 우리 곁으로 왔다. 이규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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