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패럴림픽이 전한 연대·희망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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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철 스포츠부장

2020 도쿄패럴림픽이 5일 폐막했다.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이라는 대형 이슈와 맞물려 지난달 24일 시작된 이번 패럴림픽은 역대 어느 대회보다 감동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4400여 명의 선수 가운데 가장 이목을 끈 이는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 패럴림픽 태권도 선수인 자키아 쿠다다디였다. 쿠다다디는 장애인 육상 선수인 호사인 라소울리와 함께 아프가니스탄 대표로 패럴림픽에 참가했다. 쿠다다디와 라소울리의 대회 참가 과정은 극적이었다. 8월 16일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선수들의 대회 참가는 불가능해졌다. 장애를 가진 여성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각오로 패럴림픽을 준비해온 쿠다다디는 목숨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다.

역대 어느 대회보다 감동 메시지 가득
아프간 선수들 국제사회 도움으로 탈출
숭고한 도전, 연대와 희망의 가치 전해
난민 하마드투 ‘포기란 없다’ 깊은 울림

탈레반은 1996∼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던 시절, 이슬람 샤리아법을 앞세워 엄격하게 사회를 통제했다. 여성의 사회활동과 외출, 교육 등에도 제약을 가했다. 여성들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고, 남성 보호자의 동행 없이는 외출이나 출근도 하지 못하는 반인권적인 처우에 시달렸다. 얼굴까지 검은 천으로 가리는 복장인 부르카를 입어야 공공장소에 출입할 수 있었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재장악하면서 그동안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한 아프가니스탄의 많은 여성 스포츠인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쿠다다디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도움을 호소했다. 쿠다다디는 영상에서 “전 세계 여성들과 여성 보호를 위한 기관, 모든 정부 기관에 촉구한다. 아프가니스탄 여성 시민이 패럴림픽에 나설 권리가 이렇게 쉽게 사라지는 것을 막아달라”며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 아무 성과도 없이 내 투쟁을 헛되게 하고 싶지 않다. 도와달라”고 말했다.

이 영상을 본 국제사회는 긴밀하게 움직였다. 쿠다다디는 영상 공개 며칠 뒤 국제 사회의 도움을 받아 라소울리와 함께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 세계태권도연맹과 국제패럴림픽위원회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세계태권도연맹은 관련 기관과 현지 사정에 밝은 태권도인 등을 통해 쿠다다디의 탈출을 적극적으로 도와 국제사회를 감동시켰다.

아프가니스탄 여자축구 선수들도 국제 사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2007년 창단한 아프가니스탄 여자축구 대표팀은 아프간 여성 자유의 상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국가 체제가 순식간에 바뀌면서 그동안 위험을 감수하며 얼굴을 공개한 이들은 탈레반과 이슬람 반여성주의 집단에게 보복을 당할 우려가 큰 상황이었다. 국제 축구계는 이들을 돕기 위해 나섰다. 국제축구연맹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자 축구 선수들을 탈출시켜 달라고 요청하는 서한을 여러 정부에 보낸 것은 물론 국제축구선수협회도 도움을 촉구했다. 아프가니스탄 여자 축구 선수들은 축구계의 호소를 받아들인 호주 정부의 도움으로 극적인 탈출에 성공했다.

쿠다다디와 라소울리는 마침내 프랑스 파리 등을 경유해 지난달 28일 도쿄에 도착했다. 왼팔에 장애를 갖고 태어난 쿠다다디는 지난 2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 B홀에서 열린 도쿄패럴림픽 태권도 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여자 49㎏급 첫 경기에 나섰지만 12-17로 패했다. 결과를 떠나 쿠다다디의 도전은 큰 감동을 안겼다. 아프가니스탄 최초로 패럴림픽에 참가한 여성 태권도 선수가 된 쿠다다디는 여성 인권을 상징하는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라소울리는 육상 남자 멀리뛰기 결선에서 꼴찌를 기록했다. 라소울리는 그가 도쿄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끝나버린 자신의 주 종목 100m 경기 대신 다른 종목으로 바꿔 출전했기 때문이다. 첫 경기에서 패한 쿠다다디, 꼴찌를 한 라소울리의 숭고한 도전은 메달보다 훨씬 값진 연대와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지구촌에 전했다.

패럴림픽 난민팀으로 출전한 태권도 선수 파르페 하키지마나와 패럴림픽 최초의 여성 난민 대표 선수인 알리아 이사의 이야기도 큰 울림을 남겼다. 특히 하키지마나는 반군의 공격으로 어머니를 잃고 자신도 총상 때문에 왼쪽 팔에 장애를 입었다. 르완다로 탈출해 난민 캠프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는 그는 패럴림픽을 통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양팔이 없는 탁구선수 이브라힘 하마드투의 투혼도 감동적이었다. 기차 사고로 두 팔을 잃은 하마드투는 입으로 탁구채를 물고 경기를 펼쳤다. 서브를 넣을 때는 오른발로 탁구공을 던진다. 그의 좌우명은 ‘인생에 포기란 없다’는 것. 세상의 편견과 예상치 못한 고난에 맞서 깊은 울림을 전한 패럴림픽 선수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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