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인문학 기행] “가이 포크스, 런던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폭파하라”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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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문학기행-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궁전(1)

제임스 맥티그 감독이 2006년에 만든 ‘V 포 벤데타’라는 영화가 있다. 특이한 가면을 쓴 남자 주인공(휴고 위빙)은 영화에서 ‘11월 5일을 기억하라’고 외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영국 런던 국회의사당 즉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폭파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그 사연을 알려면 1605년 영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건파우더 음모(Gunpowder Plot)’를 살펴보아야 한다.


■박해받는 가톨릭

건파우더 음모의 발단은 152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헨리 8세 국왕이 교황에게 왕후 캐서린과의 결혼을 무효로 해달라고 청원한 사건이었다. 그는 앤 불린과 결혼하기를 원했다. 교황은 그의 요구를 거절했다.

화가 난 헨리 8세는 가톨릭과 단절을 선언했다. 그는 스스로를 영국 교회 수장으로 선포하고 모든 신도들의 충성을 요구했다. 반발하는 가톨릭 신도 수백 명은 처형했다. 800개 이상의 종교 단체를 해산하고 그들의 자산을 압수했다.

헨리 8세와 그의 후계자 에드워드가 죽은 뒤 헨리와 캐서린의 딸인 메리가 여왕이 됐다. 그녀는 아버지와는 달리 가톨릭을 옹호했다. ‘가톨릭의 딸’로 불릴 정도로 가톨릭을 지지하는 스페인 왕족 출신인 어머니를 따라 가톨릭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보수적이었던 메리 여왕은 아버지와는 정반대로 프로테스탄트 300명 이상을 처형했다. 이 때문에 그녀에게는 ‘블러디 메리(냉혹한 메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메리 여왕은 오래 살지 못하고 단명했다. 겨우 5년 반 동안만 집권한 뒤 1558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번에는 메리의 이복동생인 엘리자베스가 왕좌에 올랐다. 그녀는 메리와 반대로 프로테스탄트를 지지했다. 종교개혁을 단행했고, ‘엘리자베스 종교 합의’라는 새로운 법규를 제정했다. 공직에 취임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교회에서 현직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법규를 따르지 않고 위반하는 사람은 수감되거나 처형당했다. 가톨릭을 신봉하는 일은 거의 불법이 되다시피 했고 가톨릭 신도들은 벼랑 끝으로 몰렸다.

엘리자베스는 죽을 때까지 결혼하지 않았다. 가족이 없었고, 뒤를 이을 후계자도 없었다. 그녀가 1603년 눈을 감자 가톨릭은 스페인 펠리페 2세 국왕의 딸 이사벨라를 영국 여왕으로 즉위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재무상이었던 로버트 세실이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를 서둘러 국왕 자리에 앉히는 바람에 그들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가톨릭은 새 국왕에게 지지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제임스가 그들을 좀 덜 가혹하게 다루고 그들에게 좀 더 많은 권리를 인정해주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제임스는 엘리자베스처럼 과거의 가혹한 법률을 계속 유지했다.


■음모의 시작

가톨릭은 생존을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제임스를 권좌에서 몰아낼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부인 윌리엄 클라크와 윌리엄 왓슨이 납치 음모를 획책했다. 제임스를 납치해 런던타워에 가둔 다음 가톨릭 적대 정책을 포기하라고 강요할 생각이었다. 그들의 계획은 사전에 들통 났고, 그들은 바로 붙잡혀 처형당했다.

제임스를 암살하고 가톨릭을 믿는 엘리자베스의 사촌 동생 아라벨라 스튜어트를 여왕으로 앉히려는 계획도 있었다. 하지만 이 음모도 사전에 발각돼 실패하고 말았다.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던 프랑스의 앙리 3세 국왕이 막판에 마음을 바꿨기 때문이었다.

가톨릭은 마지막에는 건파우더 음모를 준비했다. 제임스를 폭사시킨 뒤 그의 아홉 살 딸인 가톨릭 신도 엘리자베스 스튜어트를 여왕으로 앉히자는 것이었다.

거사에는 가톨릭 신도 수십 명이 가담했다. 주모자는 귀족인 로버트 케이츠비였다. 장신에 미남인데다 대담하고 검술에 능숙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었다. 그는 신중하게 동지를 모아 여러 달에 걸쳐 거사를 준비했다. 1604년 5월에는 토머스 윈터와 로버트 윈터 형제, 존 라이트, 토마스 퍼시, 로버트 케예스, 가이 포크스 등을 모아 구체적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건파우더 음모 참가자 그림. 건파우더 음모 참가자 그림.

이들은 1605년 웨스트민스터 궁전에서 의회가 개원하는 날을 거사일로 잡기로 했다. 영국에서는 의회 개원일에 국왕이 반드시 참석해서 인사말을 하는 게 관례였다. 대부분의 귀족들과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고위 인사들도 함께 참석했다. 가톨릭으로 봐서는 의히 개원일은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궁전을 폭파시켜 의회를 무너뜨리고 국왕을 폭사시키면 일거양득이 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었다.

암살에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폭약을 웨스트민스터 궁전 가까이에 가져다놓는 것이었다. 거사 가담자 중 한 명이었던 토머스 퍼시가 일의 실마리를 찾았다. 당시 웨스트민스터 궁전은 여러 건물로 이뤄져 있었다. 상하 양원과 법원은 그런 건물들 가운데 일부였다.

왕궁 주변에는 상점, 숙박시설이 많아 상인, 변호사 등이 살기도 했다. 퍼시는 여러 건물 중에서 하나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의회와 연결되는 계단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건물이었다. 또 건물에는 지하 저장고가 있었는데 마침 상원 바로 밑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건물이 의회와 가까웠던 것은 중세에는 궁전의 부엌으로 사용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의회를 폭파시키는 일은 가이 포크스가 맡기로 했다. 음모에서 가장 위험한 일이었다. 스페인의 8년 전쟁에 참전하는 등 10년 이상 군에서 복무한 경험이 많아 이 일을 담당하게 됐다. 그는 화약에 불을 붙인 다음 템스 강을 통해 달아나기로 했다. 포크스는 두 차례에 걸쳐 폭약 36통을 건물 지하 저장고로 옮겼다.


옛 웨스트민스터 궁전 지하 그림. 옛 웨스트민스터 궁전 지하 그림.

■들통난 음모

의회가 열리기 전날 의문의 사내가 몽티글 남작인 윌리엄 파커에게 비밀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 보낸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아 누가 보냈는지는 아직까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편지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몽티글 남작. 당신의 친구입니다. 저는 당신이 안전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의회 개원식에 참석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신과 인간이 시대의 사악함을 처벌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입니다. 저의 조언을 농담으로 듣지 마시고 안전한 시골 영지에 가서 숨어 계시기 바랍니다. 아직까지 별다른 조짐이 없어 보이지만 의회는 곧 끔찍한 처벌을 받게 될 겁니다. 그들은 누구의 짓인지 알 수 없을 겁니다. 이 충고는 당신에게 좋은 일이므로 절대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끔찍한 경고에 깜짝 놀란 몽티글 남작은 곧바로 화이트홀의 궁전으로 달려가 재상인 세실에게 편지를 전달했다. 얼굴이 노래진 세실은 다시 편지를 국왕에게 보여 주었다.


몽티글 남작이 받은 편지. 몽티글 남작이 받은 편지.

제임스는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당장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경찰 수백 명이 웨스트민스터 궁전과 주변의 모든 건물을 샅샅이 뒤졌다. 밤새 수색 작업을 벌인 결과 경찰은 마침내 포크스가 숨어 있던 건물 지하를 발견하게 됐다.

지하 저장고에는 엄청난 양의 폭약이 설치돼 있었다. 저장고의 넓은 공간을 절반 이상 채울 정도였다. 폭약에는 기폭장치도 달려 있었다. 불을 붙이기만 하면 10초 이내에 모두 터질 수 있는 상태였다.

영국 의회가 개막하는 1605년 11월 5일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폭파시키고, 의회 개원식에 참가할 예정인 제임스 1세 국왕을 암살하려던 이른바 ‘건파우더 음모’가 불과 하루 전에 발각돼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경찰은 지하 저장실에서 붙잡은 포크스를 런던 타워에 가뒀다. 그는 처음에는 암살 음모를 부인했다. 하지만 잔인한 고문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결국 음모 가담자들의 이름을 모두 불고 말았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양피지에 그들의 이름을 모두 적었다.

경찰은 음모 가담자 모두를 체포해 재판에 회부했다.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 일부는 교수형을 당했고, 일부는 능지처참을 당했다. 주모자인 케이츠비와 토머스 퍼시는 달아나다 총을 맞고 죽었다. 가톨릭의 음모 소식을 듣고 몰려든 폭도들이 그들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의 목을 잘라 상원 밖에 걸어놓기도 했다.


체포 당하는 가이 폭스(헨리 페로넷 브릭스 작품). 체포 당하는 가이 폭스(헨리 페로넷 브릭스 작품).

■건파우더 음모와 예술

건파우더 음모는 영화, 연극, 문학, 음악 등에서 인기 소재로 사용됐다. 음모 실패를 기념하는 노래도 만들어졌다. 영국의 어린이들은 ‘본파이어 나이트(모닥불의 밤)’ 또는 ‘가이 포크스 나이트’로 불리는 건파우더 음모 기념일에 이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폭약, 반역, 그리고 음모/ 그 이유를 나는 알지 못하네/ 건파우더 반역이 왜 잊혀지지 않는지

가이 포크스 그의 속셈은/ 왕과 의회를 날려버리는 것이었지/ 30개를 넘는 통이 아래 놓였어/ 영국을 뒤집기에 충분한 양이었지

신의 가호로 그는 붙잡혔어/ 어두운 랜턴과 불타는 성냥/ 소년아 소리쳐라 소년아 소리쳐라 벨이 울리게 하라/ 소년아 소리쳐라 소년아 소리쳐라 신이 왕을 지키게 하라.’


본파이어 나이트의 전통은 음모가 적발됐던 그날 저녁에 시작됐다. 목숨을 건져 한숨을 돌린 제임스는 신하들에게 큰 모닥불을 피운 뒤 가이 포크스 인형을 만들어 태우라고 명령했다. 이것이 수백 년간 이어져오면서 일종의 축제로 바뀐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핼러윈 행사에 밀려 흐지부지돼 버렸다.

가이 포크스 가면의 유래는 18세기 말 본파이어 나이트에서 시작했다. 당시 어린이들은 축제 때에는 가면을 쓴 가이 폭스 인형을 들고 집집마다 돈이나 선물을 얻으러 다녔다. 나중에는 어린이들이 직접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다니기도 했다. 가이 포크스 가면이 영국에서 유행하자 영연방에 속한 다른 나라에도 퍼져 나갔다.


영화로 인기를 끈 ‘V 포 벤데타’는 원래 1980년대의 유명 만화였다. 먼 미래에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한 자경단원이 영국의 독재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만화를 사면 가이 포크스 가면을 선물로 끼워주었다. 이것이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져 다시 큰 인기를 끈 것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가이 포크스 가면은 일러스트레이터인 데이비드 로이드가 만든 것이었다. 영화가 대성공을 거두자 이 가면은 다양한 시위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반정부 시위는 물론 반금융 시위에도 가면을 쓴 시위대가 등장했다.

2011년 미국에서 벌어진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에도 이 가면은 인기를 끌었다. 2012년 인도 뭄바이에서는 정부의 인터넷 규제에 항의하는 학생 시위대가 가이 포크스 가면을 착용하고 거리에 나섰다. 2014년 베네수엘라, 2019년 홍콩 반정부 시위에도 이 가면을 쓴 시위대가 나타났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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