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박형준 시장 어디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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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정치부장

박형준 부산시장이 눈에 잘 안 띈다. 슬그머니 존재감이 희미해졌나. 지난 4·7 보궐선거에서 압도적 지지율을 선보이며 등장한 강렬한 이미지가 어렴풋하다. “박형준 시장 요즘 뭐 하노” “지금 부산시장 박형준 맞제”라는 말이 어딜 가든 어렵지 않게 들린다.

보선에서 당선된 박 시장은 이른바 ‘1년 남짓’ 시장이다. 벌써 취임 다섯 달이 흘렀다. 전체 임기 약 14개월의 36%가량이 지나갔다. ‘박 시장의 시간’은 그다지 많이 남지 않았다. 그는 보선에서 62.67%라는 득표율로 화려하게 부산시민 앞에 나섰다. 취임 초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안 보여준 그의 움직임 꽤 인상적이었다. 선거 경쟁자까지 껴안은 정무직 인사는 온건하고 합리적이라는 평의 그의 긍정적 이미지를 한층 굳게 만들었다. ‘이건희 기증관’ 유치를 내건 이슈 파이팅과 대기업 총수들을 두루 만나는 등의 적극적 행보는 부산에 새로운 활력과 기대를 불어넣는 듯했다.


높은 득표율, 화려한 등장
활기찬 출발로 기대 높여

‘1호 공약’ 어반루프 지지부진
공기업 인사 우유부단 대응
갈수록 주춤거리는 듯한 행보
대선 국면서 분명한 비전 제시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참배 모습은 그의 뛰어난 정치적 감각을 한껏 증명하는 장면이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12주기를 눈앞에 둔 시점. 보수 정당 부산시장으로선 처음으로 봉하마을을 찾은 박 시장은 여야 이념을 뛰어넘는 화합의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발신했다. 무대 밖에서 참관하던 달변의 정치평론가에서 고도의 정무적 감각을 갖춘 현실 정치인, 행정가로서 모습을 바꾸는 데 성공하는 듯했다.

초반에 과하게 힘을 쏟은 결과일까. 자신감 넘쳐 보이던 박 시장 행보가 어느덧 맥없이 흐트러지는 듯한 분위기가 감돈다. 물론 그의 의욕적 발걸음으로 일순간 높아진 기대치가 슬며시 가라앉으며 나타나는 집단 착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박 시장이 보이는 모습은 시민에게 실망을 안길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박 시장 1호 공약인 미래형 교통수단 어반루프는 몇 달째 쳇바퀴 속에 갇혀 있다. 국민의힘 소속인 박 시장은 더불어민주당 위주로 구성된 부산시의회를 주로 탓한다. 시의회가 유권자 동의를 얻은 공약 추진을 정치적 논리로 반대한다고 책임을 떠넘긴다. 원래 시의회는 박 시장이 부산시정을 책임지기 전부터 사실상 여당 일색이었다. 그걸 모르고 시장 후보로 나선 게 아니다.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조건이 장애물로 놓여 있다면,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난관을 뚫어야 하는 게 이치다. 어반루프가 부산을 위해 그토록 중요한 사업이라 외쳐온 박 시장이 진정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는지 되묻고 싶다. 그나마 우여곡절 끝에 시의회가 관련 예산을 절반으로 삭감해 곧 통과시키려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부산도시공사 사장 선임을 둘러싼 소동은 지켜보기 딱했다. 선거 캠프 출신 유력 사장 후보자를 둘러싼 ‘보은 인사’ ‘낙하산 인사’라는 논란은 처음부터 불가피했다. 여러 구설과 잡음이 번지자 지역사회는 박 시장이 어떤 결정을 할지 주목했다. 측근을 배제하는 뼈저린 결단이냐 정면돌파냐. 그러나 한발 아니라 서너 발 늦은 그의 대응은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온건한 합리주의자라는 박 시장의 이미지에 어느새 우유부단하다는 색깔이 오버랩 되기 시작했다.

방역수칙 위반 논란에 휩싸인 상황도 박 시장의 발목을 붙잡는다. 남양유업 회장의 서울 성북구 자택에서 마련된 5인 이상 사적 모임에 참석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박 시장은 입장이 곤란하게 됐다. 전 세계적 방역 위기 속에 부산의 ‘방역 총사령관’이 방역 원칙 준수를 엄중하게 경고하기 어렵게 된, 안쓰러운 상황이다.

부산의 현실은 참 초라하다. 최근의 소식만 되짚어도 시민들은 우울해진다. 2020년 매출액 기준으로 국내 100대 기업에 드는 부산 업체는 없다. 수도권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현 정부의 이른바 ‘혁신도시 시즌2’ 정책도 요원한 일이다. 부산 원도심 2개 구는 ‘지방소멸 위험·우려’ 지역으로 꼽힌다.

불과 1년 남짓한 임기의 박 시장이 모든 숙제를 풀어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의 임기는 대선 국면과 정확히 겹친다. 중차대한 시기다. 박 시장에겐 대선 과정에서 부산의 과제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관철해야 할 책임이 지워져 있다.

부산시장으로서 1년여 만에 두드러진 업적을 이뤄내기란 대단히 어렵다. 그렇다고 짧은 임기 핑계만 대서도 곤란하다. 박 시장은 아직 64%의 임기를 남겨 뒀다. 시민들은 추락하는 부산을 다시 끌어올릴 비전에 오래도록 목말라 있다. 이 기대에 호응하는 건 박 시장의 몫이다. 남은 임기 동안 박 시장이 보다 희망적인 비전을 꺼내주길 기대해본다. 거꾸로 흘러간 득표율을 과신하며 자기 확신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더라도 어쩔 도리는 없다. 제8회 지방선거가 있는 내년 6월 1일 시민들의 손엔 다시 심판의 방망이가 쥐어진다. hoor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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