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의 플러그인] 떠날 사람이 하지 말아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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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요즘 내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나설 최종 후보 선출을 위한 여야 각 정당의 예비 경선이 한창이다. 대통령 선거일인 내년 3월 9일까지는 이제 불과 6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현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도 종착점에 이르고 있다는 말이다. 더욱이 조만간 여야 각 정당의 최종 후보자가 결정되면 국민의 이목도 이들에게 급격히 쏠릴 수밖에 없다. 권력의 세계에선 누구라도 감내해야 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권좌에서 떠나야 할 사람에게 마무리와 정리의 시점이 찾아온 것이다. 집권 초기의 자신감 넘쳤던 계획과 포부는 놔두고 이제부터는 수습과 마무리에 무게 중심을 둬야 할 때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지금까지 이룬 일과 아직 진행 중인 일, 차기 정부에 넘길 일 등을 정리해 다음 정권에 넘겨야 한다.

내년 대선일 이제 6개월도 안 남아
현 정권 임기 말 국정 마무리 단계

새로운 일보다 정리의 시간 활용
논란 일으킬 일은 피하는 게 도리

최근 금융권 낙하산 인사 등 우려
품위 있고 절제된 퇴장의 모습 기대


1980년대 현행 헌법 체제 이후 여러 정권이 바뀌었지만, 우리는 아직 정권의 아름다운 퇴장을 잘 경험하지 못했다. 정권 후반부에 터진 안팎의 각종 대형 사건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임기 말로 접어들면서 정권 자체의 다양한 무리수가 적잖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단임제 임기의 종료 시점이 다가오면서 마음은 쫓기듯 다급해지고, 덩달아 국민의 뇌리에 각인될 만한 ‘마지막 한 방’에 대한 유혹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동서고금의 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런 유혹을 이겨 내지 못해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고전인 <맹자(孟子)>에 맹자가 정확하게 이를 지적한 경구가 있다. “사람은 하지 않는 것이 있고 난 뒤에야 큰일을 할 수 있다(人有不爲也而後 可以有爲).”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덤비는 것보다 먼저 무엇을 절제하고 삼가야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와 반대되는 말을 ‘무소불위(無所不爲)’라고 한다면 ‘유소불위(有所不爲)’에 담긴 겹겹의 의미가 더 무겁게 다가온다.

임기 종착점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이 특히 귀를 기울였으면 하는 부분이다. 국가의 건전한 영속과 성숙한 정권 교체를 위해서라도 당리당략을 떠나 앞으로 모범으로 삼을 만한 전례를 만들어 가야 한다.

다양한 주문이 가능하겠으나, 우선 떠오르는 것은 남은 기간 국익과 국민적 동의를 분명하게 기대할 수 없는 정치적 이벤트라면 삼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최근 일각에서 나왔던 남북 정상회담을 꼽을 수 있다. 임기 초부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관한 현 정부의 각별한 관심을 알고 있지만, 임기 말 추진은 많은 논란을 낳을 게 분명하다.

남북 사이에 어떤 합의를 이룬다고 해도 임기 말 정부의 추진력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할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더구나 대선 경선 국면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임을 생각하면 괜히 불필요한 오해만 낳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보다는 기존 북핵 등의 안정적인 상황 관리에 주력하는 편이 국민에게 더 안정감을 줄 수 있다.

내부적으론 임기 말 자기 사람 챙기기가 생각난다. 역대 정권마다 불거졌던 문제다. 이른바 ‘인사 알박기’인데, 정부 산하 기관이나 공기업 등에 낙하산 인사를 통해 한 자리씩 꿰차는 것이다. 현 정부 역시 요즘 알박기 낙하산 인사로 시끄럽다.

특히 최근 금융 공기업을 중심으로 청와대 출신의 낙하산 인사들이 줄을 이으면서 금융권의 반발이 거세다. 문 대통령은 취임 당시 “공기업 낙하산·보은 인사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금융노조가 근래 “알박기 낙하산 인사가 도를 넘었다”라며 이의 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낸 것을 보면 현 정부 역시 이런 점에서는 별반 나아진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 기회와 과정, 결과의 공정을 유달리 강조해 왔던 지난 이력을 떠올려 본다면 이런 일은 더욱 국민의 짜증만 불러올 뿐이다.

차기 정권 출범을 위한 대선을 앞둔 만큼 행여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은 금물 중 금물이다. 문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긴 했지만, 문제는 통제력이 예전만 같지 않은 일선 관료들이다. 이미 일부 정부 부처에서 유력 후보 캠프와 줄을 대려는 시도가 언론에 보도돼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권력의 향배에 동물적인 감촉을 지닌 일부 관료들만의 일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공정한 대선 관리는 현 대통령의 업무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내리막길 권력의 속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품위 있고 절제된 퇴장의 모습이 서로 상충할 까닭은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 회견에서 임기 후엔 “잊힌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실마리 중 하나가 임기 말 ‘유소불위(有所不爲)’에 있음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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