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태의 요가로 세상 보기] 29. 반달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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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자세는 근골격계를 강하고 유연하게 해주고 여성의 비뇨기계 질환 등에 도움이 된다. 폐 기능을 활성화하고, 가슴을 열어주고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 시연 최현미. 달빛 자세는 근골격계를 강하고 유연하게 해주고 여성의 비뇨기계 질환 등에 도움이 된다. 폐 기능을 활성화하고, 가슴을 열어주고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 시연 최현미.

힌두 문화권에서는 달, 즉 찬드라(Chandra)는 작물과 초목의 주관자이며 달의 신으로 묘사된다. 어둠과 재앙을 지켜주는 신으로도 여겼다. 아르다(Ardha)는 반(半, half), 그래서 반달 자세는 '아르다 찬드라 아사나'라고 한다.

먼저 왼발을 앞으로 내밀어 구부리고 오른발은 뒤로 쭉 편 채 무릎은 땅에 닿게 한다.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상체를 최대한 뒤쪽으로 젖힌다. 합장한 손을 뒤로 넘기면서 턱을 들며 시선은 손 끝을 향한다.

이 자세는 전체 근골격계를 강하고 유연하게 해주며 여성의 비뇨기계 질환 등에 도움이 된다. 목을 뒤로 젖힘으로 인해 갑상선, 부갑상선을 자극하게 되며, 편도선염, 인후염, 기침, 천식 등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흉곽이 활짝 열려 폐 기능을 활성화시킨다.

가슴 쪽 아나하타 차크라를 각성시켜 울체된 기혈을 풀어줌으로 인해 우울증, 상기증, 화병 등에 도움이 된다. 삶의 무게가 무겁게 짓누를 때 달을 우러르면 한결 완화되는 경험을 보더라도 반달 자세는 분명 가슴을 열어주고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

달빛이 비치는 야외 공간에서 이 아사나를 실행하면 더 어울린다. 보름달이 뜬 날에 행하면 보름달의 기운과 교류하는 효과로 인해 더욱 금상첨화이다. 옛 선도 수련자들은 달이 뜨는 일시와 형태에 따라 그 호흡법도 달리 했을 정도이다.

달을 떠올리면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이병주 작가의 정감어린 문학적 표현이 먼저 둥실거린다. 서늘하고 고독하면서도 그 속 어딘가에 따뜻하고 포근한 그런 온기를 품고 있을 듯한 느낌!

달은 신이고 전령사이며 선(善) 또는 악(惡)의 상징이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남성이고 어떤 문화권에서는 여성이다. 어떤 곳에서는 죽음을 은유하고, 어떤 문화권에서는 부활을 상징한다. 남매나 부부, 음양으로도 묘사되었다.

인도에서는 달이 차는 상승 주기와 하강 주기를 각각 '슈클라 팍샤'와 '크리슈나 팍샤'라 부른다. 흰 면과 검은 면이란 뜻이다.

달은 변화와 성장을 한눈에 보여준다. 달의 신 찬드라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되풀이하듯 우리의 삶도 높낮이, 부침, 흥망성쇠를 경험한다. 하루에도 여러 번 변화 무쌍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시시때때로 희노애락 등의 감정의 기복을 맛보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마치 초승달에서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 그믐달 삭(朔)의 주기로 달이 변하듯 말이다.

찬드라가 시바의 머리 위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재충전을 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활동 후에는 쉼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며 삶을 영위해 가는 것이 달의 변화하는 모습과 많이 닮았다.

달은 재생의 기쁨을 상징한다. 아사나 순간 순간 긴장과 이완을 통해 삶과 죽음을 경험하며 이어지는 요가 수련도, 결국은 방전되고 지쳐가는 삶의 에너지를 불러 일으켜 다시 태어난 재생의 기쁨을 맛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인들은 왜 달이 여성적 특성을 가졌다고 믿었을까? 달이 해처럼 스스로 빛을 발하지 않고 해가 내뿜는 빛을 반사해 빛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해가 사라지면 풍성한 모습을 드러내는 점이 마치 부드럽고 조용한 성품의 여성과 닮았다고 보았다. 달이 차서 기우는 순환 주기와 여성 생리 현상(월경, 月經)이 같은 주기로 반복을 거듭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서로 깊은 관련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Artemis)가 로마 신화에 가서는 다이아나(Diana)가 되고, 또 그리스 신화의 셀레네(Selene)도 로마 신화에 가서는 태양신 헬리오스와 남매지간인 루나(Runa)가 된다.

이집트에서는 이시스(Isis)가 있고, 에스키모는 이갈루크(Igaluk)가 있다. 중국으로 가면 항아(姮娥)라는 선녀가 월궁에 살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전 설화에는 호랑이에 쫓긴 남매가 밧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해와 달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이나 멕시코의 마야인이나 아즈텍인, 페루의 잉카인 그리고 북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이 해를 숭배하고 찬양했다면, 우리 조상들은 달을 안고 살며 달을 찬미했다. 달의 문화를 꽃피웠다. 그리하여 달은 많은 시인 묵객들의 좋은 작품 소재가 되고 은유가 되고 배경이 되었다.

신라의 찬기파랑가부터 고려가요, 시조, 민요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달이 등장한다. 선조들은 뜨고 지는 달을 보고 유정물 무정물의 생성과 소멸을 체득하며, '달도 차면 기운다'라는 이치와 교훈을 새겼다. 나고 죽는 삶을 되돌아 보며 인생무상을 노래했다. 온갖 권력과 부를 누리면서 천년만년 살 듯 안하무인 거들먹거리는 위정자들이 곱씹어야 할 경구이다.

달의 빛이 일천강(一千江)에 미친다는 월인천강(月印千江)이란 말도 있다. 달은 하나지만 만천(萬川)과 천강(千江) 모두에 두루 비친다는 말이다.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 즉 '하나가 곧 일체의 전부요, 일체의 전부가 곧 하나다'라는 말로도 해석된다.

요가 동작 하나가 몸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할 때 종종 비유되는 구절이며, 인체 생리학에서는 홀리스틱 시스템(holistic system)이란 용어의 뜻과 유사하다.

일반적으로 요가라고 알려진 하타요가는 글자 뜻대로 하면 '양음요가'이나 우리는 통상 '음양요가'라고 부른다. 이런 걸 미루어 보아 확실히 동양권에서는 태양보다 달을 더 중시했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서구권에서는 달을 광기 혹은 마법의 기운을 머금은 사물로도 보았다. 늑대인간이 늑대로 변할 때나 E·T가 손가락으로 신통력을 부릴 때나 드라큘라 백작이 등장하는 때도 모두 보름달이 뜰 때였다.

달은 또한 죽음의 신이기도 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달 세계로 올라가 산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우리 민속신앙에서는 달에 정령이 있는 것으로 믿어 월백(月魄)이라 했으며 여인들의 애달픈 기원의 대상이었다.

달빛은 마음의 어둠을 채우는 순금의 언어라 할 수 있다. 그 달빛의 말을 생각할 때마다 종종 달빛의 맑은 도취 속에 빠지곤 한다. 보름달 뜬 가을밤 대숲 정자에 앉아 거문고를 뜯거나 갈대 흔들리는 물가에 배 띄워 놓고 술잔 기울이며, 독작을 만끽하는 듯한 옛 선비들이 그린 산수화를 보면 달과 내가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느낌이 든다. 무아지경의 기쁨이 그림 속에 담겨 있다.

우리나라 국민화가로 불리는 이중섭은 보름달이 뜬 밤에 까마귀 다섯 마리가 세 가닥 전선줄에 내려 앉은 모습을 담았다. 명작 '달과 까마귀'이다.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도 떠오른다.

삼국사기에도 백제 의자왕과 관련되어 달과 연관된 이야기가 등장한다. 보름달과 초승달을 국가의 흥망성쇠와 연관시켜 예언한 기록이 나오는데, 땅 속에서 나온 거북이 등에 '백제는 보름달이요, 신라는 초승달이다'는 글귀의 해석을 점술가들에게 의뢰했는 바, '보름달은 차면 기우는 것이라 망할 징조요, 초승달은 점차 찰 것인즉 앞으로 흥할 것이다'라고 답했다. 예언대로 그후 백제는 멸망하고, 신라는 삼국통일을 이루었다는 설화이다.

달을 좋아하는 선조들이 지었다는 정자 이름을 보면 달을 희롱하기 좋은 정자라는 뜻의 농월정(弄月亭), 달을 보고 웃는다는 소월정(笑月亭), 달맞이 하기 좋은 정자라는 뜻의 요월정(邀月亭)이 있고, 게다가 달을 애무하는 동네라는 무월리(撫月里)라는 지명도 있다.

산 위에 뜬 달이라는 산중월(山中月), 물 위에 일렁거리는 달 수중월(水中月), 마음 속에 있는 달이란 의미의 심중월(心中月)이라는 단어도 운치가 있다.

견지망월(見指忘月)도 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르켰는데 손가락만 본다'는 뜻으로 본질은 외면한 채 지엽적인 것에 집착함을 경계하는 말이다.

'반달같은 딸 있으면 온달같은 사위 삼겠다'는 속담도 있는데, 이는 고운 딸이 있어야 잘난 사위를 맞을 수 있다는 뜻이며, 자기 것이 허물이 없어야 남에게도 허물이 없는 것을 요구할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달빛 비치는 정감있는 풍경을 잘 그려낸 곡을 꼽으려면 단연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14번 월광(月光)을 든다. 1801년 작곡된 이 작품에 독일의 음악 평론가 레루 슈티프가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19570년 미국의 유명 싱어 송 라이터 겸 영화배우인 폴 앵카가 16세에 작사 작곡하여 발표한 데뷔곡이자 첫 번째 히트송이 달의 신을 상징하는 '다이아나'이다. 그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명곡 '마이웨이(My Way)'의 작사가로도 유명하다.

흑인 노예들이 낮에 힘겹게 일하고 겨우 밤이 되어서야 휴식을 취할 때, 노래를 흥얼거리며 고단한 삶의 애환과 한서린 정서를 쏟아냈던 음악이 바로 재즈이다. 그래서 재즈는 달과 연관성이 있고 밤에 더 어울리는 음악이라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우수에 찬 곡조나 푸른 기운이 감도는 색조를 띤 곡들이 유독 재즈에 많은 연유라고 생각된다.

나이 들어도 아직까지 동심의 달 속에는 계수나무가 있고, 토끼가 떡방아 찧고 있던 그 시절이 그립고, 또 동심의 그 때로 돌아가고픈 향수도 있다. 그러나 은유와 신화는 과학에 의해 늘 그렇게 허물어진다. 우리는 그것을 발전이라 부르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많은 걸 잃고, 더 가난해졌다.

요즘은 윤극영 작사 작곡의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로 시작되는 '반달' 같은 동요를 부르는 해맑은 모습의 어린이를 찾아 보기가 쉽지 않다. 사랑 타령, 이별, 눈물 등의 가사로 점철된 유행가 등을 부르며 몸을 비비꼬고 흔들며 어른 흉내내는 아이들을 보고 잘한다고 웃고 박수치고 있는 작금의 어른들의 모습이 아니던가.

달 속에서 찾던 천진난만한 동심은 이제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가난해지는 동심의 끝이 두렵기만 하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은 희망과 기원의 대상이었다. '명월여시(明月如是)'란 공산(空山)에 외로이 비치는 밝은 달처럼 우리의 마음 속에는 본디부터 명월(明月)이 있다는 말이다.

반달 자세를 취하면서 달의 정기를 듬뿍 받아 들이고서 심신을 활기차게 추스려 볼 일이다. 이 차제에 혼탁하고 치졸한 마음들도 달빛 속에 깨끗이 헹구었으면 좋으련만, 달의 맑은 영혼이 비쳐진 숨결을 마음껏 들이켜 보는 수련도 멋있을 것 같다.


<보름달/최진태>

근엄한 감투일랑 철면피 뻔뻔함도/ 어느 하나 못갖추고 장삼이사 범부되어/ 한 뙈기 풀잎일망정 조심스레 움켜쥔다

이 몸이 이 세상에 왜 왔는지 돌아본들/ 그래도 아침되면 밝은 햇살 눈비비고/ 도란도란 식구들끼리 서로 엉겨 정나눈다

중천에 높이뜬 달 아이들 하하호호/ 동심은 천심이라 보름달 따라 웃네/ 달속에 어린 전설들 두 귀 쫑긋 들어보라!


<달빛 기도/ 이해인>

(중략)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내/ 좀 더 환해지기를/ 모난 미움과 편견을 버리고/ 좀 더 둥글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 하려니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 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두고/ 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



최진태 부산요가지도자교육센터(부산요가명상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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