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우의 맛있는 여행] 잃어버린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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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부 선임기자

A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20년 동안 일본 전문여행사를 운영해온 사람이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사무실 문을 닫고 집에서 쉬고 있던 그는 생활비가 모자라 경남의 작은 조선소에서 취업 면접을 봤다고 한다. 하도 속상해서 부산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는 것이다. 나이가 많아 면접에서 탈락한 것 같아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역시 일본 전문여행사를 하는 B에게 오랜 만에 전화를 걸었다. 일본 여행 서적도 두 권이나 출간해 깊이있게 안내한다는 평가를 받던 사람이었다. “코로나로 힘들었던 지난 2년 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대뜸 “3년”이라고 반박했다. 코로나 사태 1년 전인 2019년 한일 정치 갈등 때문에 일본 여행이 마비됐던 시간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B의 말처럼 사실 부산 해외여행업계는 3년째 아무런 할 일이 없어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한일 정치 갈등에 이어 상호 경제보복 바람이 부는 바람에 코로나 이전에 이미 일본 여행이 사실상 중단됐기 때문이다.

당시 일부에선 ‘한국 관광객 급감으로 일본 여행업이 고통 받고 있다’며 즐거워했다. ‘동전에는 앞면만 있다’고 생각하는 단편적인 시각이다. 일본에 여행객을 보내는 회사는 우리나라 여행사들이었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일본 여행에서 쓰는 비용을 ‘100’이라고 보면 그 중 ‘20~30’은 우리나라 여행사들의 수입이었다.

특히 부산 여행사들은 전국적으로 일본 여행객 비중이 가장 높았다. 일본 여행 중단 때문에 부산 여행사들이 다른 지역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3년 동안 돈 한 푼 벌지 못하고 지출만 이어진다면 벌어놓은 돈이 아무리 많더라도 버티기는 쉽지 않다. 부산 여행사들의 현실이 바로 이러했다.

최근 코로나 예방 백신 접종률 증가로 해외여행에 대한 기대는 커지고 있다. 서울의 혜초여행사는 16일 코로나 발생 이후 우리나라 여행사로는 처음 유럽 트레킹 패키지 투어를 재개했다. 괌과 사이판 여행도 인기를 얻으며 활기를 띠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이런 기대를 갖는 게 아직 시기상조로 보인다. 코로나 상황이 호전되더라도 한국과 일본의 정치 갈등이 풀릴 기미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일러도 내년 우리나라 대선이 끝날 때까지는 상황 개선은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정부는 코로나 때문에 영업을 못해 경제적 피해를 입은 여행사들에게 지원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한일 정치 갈등으로 피해를 입은 부산 여행사들의 경우 사회적 분위기 탓에 누구에게도 말도 못한 채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이들의 피해는 과연 누가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할까.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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