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8년 조선서 발생한 ‘유유 사건’, 다른 각도서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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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남편 만들기/강명관

는 16세기 조선에서 일어났던 ‘가짜 남편 사건’을 다룬 얘기다. 이른바 ‘유유 사건’이 그것이다. 1558년 대구의 양반 유유(柳游)가 가출하면서 벌어진 이 사건은 6명의 무고한 죽음을 낳으면서 당대의 화제가 되었다. 이 사건을 글로 남긴 것이 1607년 이항복의 ‘유연전’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 얼마 전 역사학자 권내현이 출간한 도 이 사건을 다룬 연구서다. 이 연구서와 이항복의 ‘유연전’은 유유의 동생 유연이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다는 것과 사건의 배후에 자형(이제)이 있었다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삼고 있다. 자형은 가혹한 고문으로 죽었다.

자형 이제의 누명 벗겨 억울한 죽음 밝혀
유유 부인, 사기극 진정한 기획자로 드러나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가 쓴 이 책은 같은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추적한다. 자형 이제의 누명을 벗기고 유유의 부인 백씨가 가짜 남편을 만든 사기극의 진정한 기획자임을 드러낸다. 실제 당대에 자형 이제 죽음의 억울함을 밝히는 글(‘이생송원록’)이 생산되기도 했다.

사건 전말은 다음과 같다. 1558년 유유가 가출했다. 4년 뒤인 1562년 채응규라는 자가 유유를 사칭했다. 1564년 동생 유연이 가짜를 눈치 채고 고소했으나 가짜는 도망쳐 종적이 묘연해진다. 그러나 유유의 아내 백씨가 동생 유연이 형 유유를 살해했다고 고소한다. 동생 유연은 고문을 견디지 못해 거짓 자백을 하고 사형 당한다. 그러나 15년 뒤인 1579년 진짜 유유가 나타나 재조사가 진행된다. 그 결과 도망친 가짜 채응규가 체포돼 서울로 이송 중 자살하고 그 배후로 처가 재산을 노린 자형 이제가 지목된다. 자형 이제는 고문을 받다가 죽고, 이 사건은 21년 만에 종결된다.

저자는 가출한 유유는 자식을 못 낳는 성불구자였다고 본다. 백씨 부인은 장남인 남편 유유의 적장자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이 사기극을 기획했다는 것이다. 남편도 가출했고 아들도 없는 경우 당대 조선에서 형수의 모든 권리는 시동생이 차지해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 처지에 내몰리자 백씨 부인은 시동생 유연을 고소해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거다. 그러면 백씨 부인과 가짜 남편 채응규는 어떤 관계였나. 저자는 사통했다고 본다. 가짜가 첫날밤 백씨 부인이 월경을 했다는 사실과 허벅지 안쪽에 콩알만 한 점이 있다는 내밀한 사실까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씨는 가짜의 아들 채경백을 양자로 입양하기까지 했다.

저자가 보기에, 백씨의 지략은 사족체제의 이데올로기 근저를 건드리며 자기 권리를 지키고자 한 것이었다. 당대 종법사회가 형을 살해한 동생을 용납할 수 없다는 허점을 파고든 거다. 이 사건은 희한했다. 나중에 이제를 악인으로 만들어 죽인 것은, 이전에 동생 유연을 죽인 사람들과 국가 사법 시스템의 과오를 덮어버리려 희생양을 만든 것이었다. 또 백씨 부인을 추궁할 수 없었던 것은 가부장제 아래서 남성의 성적 무능력을 덮으려는 의도가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유 사건은 ‘많은 얼굴’을 가졌던 복잡한 사건이었다. 강명관 지음/푸른역사/280쪽/1만 59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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