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자본주의 키즈에게 노동의 가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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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희 공모 칼럼니스트

매년 10월이 되면 미래 예측 보고서라 할 수 있는 의 다음 해 전망이 궁금해진다. ‘언택트’, ‘소확행’ 등의 단어가 이 책을 통해 처음 소개됐다. 올해의 트렌드 키워드 중 필자가 주목한 것은 ‘자본주의 키즈’였다. 어릴 때부터 자본주의적 요소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돈과 소비에 편견이 없고 재무관리와 투자에도 적극적인 MZ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옛말에 “돈을 밝히면 못 쓴다”고 했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는 돈을 안 밝히면 정말 몹쓸 처지가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자산 가치 폭등하는데 근로소득은 정체
노동을 투자 개념으로 보는 MZ 세대
자본주의 고도화에 자신의 의미 찾아야

돈이 돈을 버는 것이 자본주의의 핵심이다. 근래엔 돈이 돈을 너무 잘 벌어서 사람이 버는 속도를 훌쩍 뛰어넘었다. 아파트 값은 불과 몇 달 사이에 일반 직장인의 연봉을 훨씬 웃도는 금액이 올라 있다. 그 앞에서 쉬지 않고 일하며 번 돈은 무력하다. ‘벼락 거지’라는 말이 탄생할 만큼 많은 청년들이 근로 의욕을 잃고 박탈감을 느꼈다.

과거 부모님 세대에선 노동만으로도 자산의 가치 증식에 크게 뒤처지진 않았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일자리를 구하면 자동차도 한 대 사고 아파트도 한 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는 사회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보편적인 과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월급만으로 내 집을 장만하기는 버거운 일이 되었다. 지난해 11월 발표된 KB부동산의 추정에 따르면 연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았을 때 서울 아파트를 구입하는 데 26.5년이 걸린다고 한다.

매년 연봉 계약 때면 일반 회사에선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평균적으로 2% 정도 인상해 주었다. 주택시장을 보아도, 주식시장을 보아도 물가가 2%만 오른 것 같진 않은데, 중앙은행이 관리하는 물가지표는 소비자물가지수를 근거로 한다. 작년에 바나나 1개를 먹었으면 올해도 바나나 1개는 먹을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 오른 급여로 바나나를 먹긴 먹는데 마냥 기쁘지가 않다. 내 월급만 빼곤 다 오른 것 같다.

2030 세대는 결코 근로소득에만 의지할 수 없다. ‘동학 개미’ 운동부터 코인 열풍을 주도했다. 그러나 투자엔 시드머니가 중요하다. 당연하게도 수익의 크기는 투입된 자본의 규모에 비례한다. 사회생활 경력이 비교적 짧은 청년 세대는 종잣돈이 적을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시장 평균을 능가하는 수익률을 기록하더라도 수익의 절대적 크기는 작을 확률이 높다.

자본의 규모는 투자 기회와도 관련이 있다. 아주 유망해 보이는 회사라도 주식이 상장되지 않았다면 투자할 방법이 없다. 이런 신생 기업은 벤처 캐피털 등 기관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적어도 수십억 원은 보유해 사모펀드에 “내 돈 좀 굴려 주쇼” 하고 요청하면 개인도 투자 참여가 가능할 수는 있겠다. 그 정도의 돈이 없으니 문제다. 이런 종류의 투자 성공 시나리오는 기업공개(IPO) 때 투자금을 회수하고 막대한 이익을 거두는 것인데, 주인공은 주로 기관투자자들이다.

올 8월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개발사인 크래프톤이 상장됐는데 비록 ‘떡상’에는 실패했지만 높은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배틀그라운드는 2017년에 출시되었는데, 필자는 당시 진지하게 투자 방법을 모색했었다. 곧 모바일 버전도 출시한다고 하고 중국 시장에도 진출한다고 하니 창창한 앞날이 기대됐다. 하지만 투자하지 못했다. 가진 돈이 겨우 수백만 원이라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돌이켜 보면 어리석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투자 방법을 수소문하고 얼마 되지도 않는, 그래서 눈길조차 받지 못할 투자금을 만지작거리진 않을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크래프톤으로 이직했어야 했다. 이른바 ‘몸빵 투자’다.

최근 기업이 주식을 상장할 때 직원들에게 우리사주를 지급하는 것이 대표적인 근로복지 제도로 자리 잡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 직원들은 상장 시점 기준 우리사주로 개인당 평균 16억 원의 차익을 얻었고, 카카오뱅크 직원은 평균 6억 원을 벌었다. 크래프톤도 그 차익이 수억 원이었다. 앞으로도 줄줄이 예정된 기업공개에서 앞선 사례들은 재연될 수 있다.

만약 어떤 회사에 투자하고 싶을 만큼 성장성과 비전을 발견했다면 일단 입사하고 볼 일이다. 혹시 작은 기업이라 불안한가? 모든 투자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물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면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대부분은 돈을 목적으로 일하고 있다. 근로가 투자가 되는 것, 곧 몸으로 투자하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 메커니즘이 자본주의 키즈들에게 말하는 노동의 가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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