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코로나 시대의 유흥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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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정희 ㈔여성인권지원센터‘살림’ 상임대표

코로나19가 여전히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가운데, 부산에서는 유독 유흥업소 관련 확진 사례가 눈에 띈다. 올해 3~4월에는 유흥업소 관련 연쇄 감염이 부산 전체 확진자의 절반에 이른 적도 있으며, 7월에도 유흥업소를 거쳐 간 확진자가 많이 늘어나 대규모 확산의 우려가 커지는 등 크고 작은 확진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유독 부산에서 유흥업소 확진이 많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하게도 유흥주점 숫자가 많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부산의 유흥·단란주점은 4143개로 서울(2342개)의 2배에 가까우며 인구 10만 명 당 유흥주점 수로 따지면 다른 지역의 2~4배로 전국에서도 압도적인 1위다. 부산의 통닭집이 1000개가 조금 넘고 커피전문점 숫자가 4200여 개(2018년 기준)인 것만 비교해 봐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부산 유흥·단란주점 유독 많아
인구 10만 명당 치면 전국 1위

지하경제·성 산업 크다는 방증
강력범죄 많고, 성차별 가속화

‘유흥접객원’ 규정 자체도 구태
정부·지자체 관심 갖고 개선을


많아도 너무 많은 부산의 유흥업소가 가진 문제를 말하기 전에 유흥업소의 본질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 유흥업소란 ‘유흥종사자’를 둘 수 있는 업소를 말하는데, 전 세계에서도 이러한 형태의 업소를 법적으로 규정한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식품위생법 시행령 제22조에 따르면 유흥종사자란 “손님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노래 또는 춤으로 손님의 유흥을 돋우는 부녀자인 유흥접객원”을 말한다. 이러한 정의는 1962년도에 식품위생법이 제정된 이후로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법 제정 이후 지금까지 일제강점기에 실시해 오던 방식 그대로 유흥접객원에 대해 성병 검진을 해 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유흥업소에서 성매매가 불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방증한다.

이러한 유흥업소가 전국에서도 부산에 가장 많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문제를 낳는가? 첫 번째, 부산의 경제를 왜곡시킨다. 유흥업소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부산의 지하경제와 성 산업 규모가 타 시도보다 매우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흥업소를 통해 이루어지는 기업의 과다한 접대 문화 역시 막대한 사회적 손실을 초래하기도 한다. 노동자 4명이 사망한 2018년 엘시티 사건에서도 건설업체는 룸살롱에서 성 접대를 일삼았다. 성 착취 산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하더라도 코로나 시대 유흥업소는 폐업 상태에 가까운 집합금지 명령으로 영업을 아예 못 하게 되었다. 지역 경제의 순환구조가 막히면서 지자체에 가져다 준 손실 또한 엄청날 것이다.

두 번째, 강력범죄의 위험성이 높아진다. 유흥업소 밀집 지역은 우범지역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도 부산은 5대 강력범죄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도시 중 하나다. 2016년도 5대 강력범죄 발생률 전국 1위는 부산 중구였으며, 부산 동구는 6위, 부산진구는 9위를 차지했다. 유흥업소 여종업원과 소위 노래방 도우미 여성들이 살인 사건을 비롯한 강력 범죄의 피해자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유흥업소는 다양한 형태의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차별을 가속한다. 이미 유흥접객원 조항 자체가 여성이 남성의 ‘유흥’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 성차별적인 규정이다. 성매매뿐 아니라 온갖 형태의 성희롱과 성폭력이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룸살롱으로 대표되는 유흥업소는 ‘비즈니스룸’이라는 이름으로도 알 수 있듯 접대 등 기업의 비즈니스 장소로 많이 이용되어 왔다. 이곳에서 유흥접객원 여성이 술을 따라 주고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할 때, 이러한 ‘비즈니스’의 주체는 곧 남성으로 간주한다. 때문에 유흥업소를 통해 만들어진 술자리 회식 문화는 같은 일터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의 존재를 지운다. 그뿐인가. 직장 회식에서 술을 따르라는 둥 빈번한 성희롱도 유흥업소 문화의 다른 판본에 지나지 않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9월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에서 유흥주점·유흥접객원 실태조사를 통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발제자로 나선 신박진영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녀자’만을 유흥접객원으로 두는 것뿐 아니라, ‘유흥접객원’ 조항 자체가 문제이며, 이를 삭제해야 한다. 세계 어느 곳에도 밀폐된 방에서 손님 옆에 앉아 술을 따르고 흥을 돋우는 것을 법으로 명시한 곳은 없다.”

코로나19 시대에 다시 부산의 유흥업소를 생각한다. 자영업자들의 생계 위협이 한계를 이미 넘어선 지금, 집합금지 명령으로 문을 닫은 업장들을 보며 가슴이 아픈 한편, 유흥업소에서의 코로나 확진이 이어지는 것을 보며 지자체의 고충을 외면하기도 어렵다. 유흥주점이라는 위험한 경제에 기대어 굴러가는 산업은 자영업자와 그곳에서의 종사자 모두를 위태롭게 한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의 그림자를 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지자체는 정부는 유흥접객원 조항을 폐지하고, 지자체는 업종 전환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하자. 어쩌면 부산의 경제와 문화를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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