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돌아온 황소상(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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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가장 정이 가는 가축을 고르라면 아마도 소를 꼽지 않을까 싶다. 오랜 농경 생활을 하는 동안 동고동락해 온 가축이 바로 소다. 소는 정말 한국인에게 예사 가축이 아닌 것이다. 그중에서 힘이 세고 몸집도 큰 수소인 황소는 더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한국인은 가장 좋아하는 그림도 화가 이중섭의 ‘황소’를 자주 꼽는다. 또 정지용의 시 ‘향수(鄕愁)’에 나오는 ‘얼룩백이 황소의 게으른 울음’을 읊으면서 평온한 시골 풍경을 떠올린다.

그런데 보통 황소라고 하면 한자의 ‘누를 황(黃)’자를 생각하지만, 사실은 순우리말이다. 15세기에 황소는 ‘한쇼’로 불렸다. 크다는 의미의 접두사 ‘한’이 붙어 한쇼가 됐고, 지금에 이르러 황소가 됐다고 한다. 한글 창제 직후 간행된 월인천강지곡에도 ‘한쇼랄 내니 몸 크고 다리 크고’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만큼 황소가 우리 민족과 친숙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시골에서도 농사일하는 황소는 찾아 보기 어렵다. 그러나 우직하고 듬직한 황소의 이미지는 많이 애용된다.

부산에서는 최근 한국거래소가 부산국제금융센터(BIFC) 뒷마당에 있던 황소상(像)을 이달 말까지 정문 쪽으로 옮기기로 해 화제다.

증시 호황을 상징하기도 하는 황소상은 현대 자본주의의 심장인 미국 월가에 설치된 게 많이 알려져 있다. 황소가 왜 증시 활황의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인지는 몇 가지 설이 있다고 하는데, 한국거래소의 황소상은 우리 국민에게 이와 다른 또 다른 느낌을 줬던 모양이다.

애초 한국거래소 본사가 있던 부산 범일동에 설치된 황소상은 돼지를 닮았다는 외모(?) 논란에 휩싸였다. 그러다가 2014년 말 문현동 부산국제금융센터로 본사를 옮기게 된 한국거래소는 아예 새 황소상을 만들어 센터 정문 앞에 설치하기로 했다. 그러나 다른 금융기관들이 이에 반대하면서 황소상은 센터 건물 뒤쪽의 후미진 곳으로 숨어야 했다.

사람들의 눈길에서 사라졌던 황소상을 다시 불러낸 건 시민들이었다. 많은 시민이 황소상을 아쉬워하자 BIFC 총괄관리단도 어쩔 수 없었던지 정문 쪽 이전을 승인한 것이다. 황소에 대한 애틋한 국민 정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새 보금자리를 튼 황소상이 부산금융센터는 물론 부산경제 도약을 바라는 시민 염원의 상징물로 더욱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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