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준·박헌영·노무현·세월호 통해 ‘꿈’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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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수상작 ‘예언자와 보낸 마지막 하루’ 손홍규 소설가

소설가 손홍규는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꿈인지를 알고 싶었고 그걸 썼다”고 말했다. 부산일보DB

“우리가 어떤 일을 했는지를 기록하는 게 역사라면 우리가 어떤 꿈을 꾸었는지를 기억하는 건 소설이다.” 장편소설 <예언자와 보낸 마지막 하루>로 제38회 요산김정한문학상을 수상하는 작가 손홍규(46)의 핵심 전언이다. 이 소설의 안쪽은 매우 아픈 것인데 그 아픔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꿈’과 ‘예언’, 우리 삶의 심층에 닿으리라는 믿음이 생기는 소설이다. 그와 서면 인터뷰를 했다(그 일부를 지면에, 전문은 부산닷컴에 게재한다).


“이 소설은 세월호 참사에서 시작된 것
그때 느낀 환멸을 사유하고 싶었다
나의 모든 것 남김없이 쏟아부은 작품”


-작품에는 독특하게 전봉준 박헌영 노무현 세월호(의 아이)가 나오는데.

“전봉준은 혁명에 실패했고 박헌영도 실패했다. 노무현도 실패한 민주주의자이고 세월호는 이유도 모른 채 생존에 실패한 참사였다. 이들 모두가 저에게 주는 화두는 대체 무슨 꿈을 꾸었기에 그들은 비참하게 죽어야 했는가 였다. 혁명, 민주주의, 인간의 존엄성, 이렇게 쉽게 요약하는 대신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꿈인지, 인간적인 꿈이 과연 가능한지 알고 싶었다. 또한 소설의 인물 넷은 각각 ‘백성의 시대’ ‘인민의 시대’ ‘민중의 시대’ 그리고 ‘시민의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각 시대도 부각시키고 싶었다.”

-세월호 아이는 전봉준 박헌영 노무현과 좀 다르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전봉준, 박헌영, 노무현의 죽음이 뜻하는 것과 평범한 한 시민(학생)의 죽음이 뜻하는 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혁명이란 삶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사건이고, 삶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사건은 언제나 우리의 내부에서, 아주 작은 균열을 일으키며 시작되지 않던가. 평범한 한 시민의 죽음은 그를 둘러싼 가족 모두의 죽음이기도 하고 그 가족을 둘러싼 이 사회, 세계가 추구했던 어떤 가치가 몰락했음을 뜻하기도 한다.”

그는 “이 소설은 세월호 참사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아마도 실제적인 구상의 단계는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침몰하는 배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면서 느낀 환멸, 나 자신에 대해, 이 세상에 대해 느낀 환멸, 그 환멸을 어떻게든 사유하고 싶었다. 내가 진짜 알아야 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고 마침내 그 일을 시작한 것일 뿐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 소설을 쓰는 내내 나는 퍽 아팠다”고 했다.

-이 소설을 쓰기 위해 공부는 얼마나 했나.

“내가 공부라는 걸 했던 순간부터 알게 된 모든 것들을 담은 소설이다. 나는 소설가로서 반드시 자신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쏟아부어야 하는 순간을 만날 수밖에 없다 생각했고 이 소설을 쓰던 순간이 바로 그러했다.”

-이 소설을 쓰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나.

“순수하게 집필 과정만 보자면 1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이르러 반드시 써야만 했고 쓸 수밖에 없었던 소설이었기에 작가로서 살아온 스무 해의 세월 동안 차근차근 썼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말에서 좋은 소설은 항상 작가의 모든 것이 다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것이다.

-제목에서 왜 예언자를 호명했나.

“우리는 보통 예언을 미래를 말하는 것으로 여기지만, 미래를 말할 수 있으려면 삶을 온전히 이해해야 한다. 한 사람의 삶에서 온 생애가 하나로 수렴되는 순간은 아마도 죽음을 앞둔 순간일 테고, 그 순간 우리는 삶을 가장 선명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며, 마치 예언이라도 할 수 있을 것처럼 환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순간 만약 나라면 어떤 예언을 하고 싶을까. 아마도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들, 그것을 소설에 쓰고 싶었다.”

그는 등단 이후 소설을 11권이나 냈는데 “여전히 내 꿈은 소설가”라며 “소설을 쓰면서 깨달은 것 가운데 하나는 결국 소설가는 계속해서 소설을 써야만 행복하다는 사실이다”라고 했다.

-최초의 충격을 던졌던 작품은 없나. 작가의 입담은 어디서 왔나.

“내게 소설이란 ‘사람과 삶을 기억하는 이야기’다.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영감은 사람과 삶에서만 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최초로 문학적 충격을 준 작품이 없지는 않은데 마르께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과 같은 소설을 꼽을 수 있다. 대학 새내기 시절에 이 작품을 읽었고, 나는 이 소설이 사연을 다루는 방식에 매료되었다. 신비로움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신비로움을 되찾아주는 방식을 보여준 소설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나는 이와 비슷한 충격을 매번 다른 작가와 다른 작품들에서 느꼈고 이 끊임없는 독서의 과정 모두가 내 글쓰기의 영감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만약 내게 입담이라는 게 있다면 그건 내 유년, 소년 시절의 고향 마을 사람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이 들려주거나 직접 보여준 이야기는, 한마디로 ‘유쾌한 사람들이 들려주는 비참한 이야기’ 혹은 ‘비참한 사람들이 들려주는 유쾌한 이야기’였다. 웃음 뒤에 살짝 비친 눈물, 울음 뒤에 지은 환한 미소 같은 거 말이다. 나는 그이들이 들려준 쓸쓸하지만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닮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

1975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한 작가는 “요산 선생은 삶과 문학이 일치하는 작가였다”라며 “선생의 뜻에 어울리는 작가가 되기 위해 더 정진하겠다”라고 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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