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법정의 무게, 겁내야 하는 법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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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법무법인 예주 대표변호사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 주십시오.” 법정 경위의 안내에 따라 법정에 있는 모든 방청객은 신체적 장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판사들이 입정하여 착석할 때까지 기립하여 대기한다. 그리고 변호사들은 법정에 들어설 때와 나갈 때, 재판부를 향하여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이는 판사 개인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사법제도 그 자체에 대한 존중이며, 법정과 재판부의 권위를 존중하고 공정한 심리와 판결을 고대한다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런데 몇 년 전 이러한 사법제도의 권위와 신뢰를 무너뜨리는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으로 대법원장이 구속기소 되었고,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법관만 하더라도 총 14명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법관들 가운데 처음으로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확정받았는데, ‘법조계 참사’라고도 불린 이 사건 재판들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법조계 참사’ 사법농단 재판 진행 중
재판부 권위·공정한 판결 기대 ‘흔들’

대장동에 고위직 법조인 우르르 등장
권순일 전 대법관 피의자 신분 전락

전관예우·재판거래 갖은 의혹 휩싸여
원칙과 법, 양심으로 사법 정의 세워야

그런 가운데 요즘 수천억 원에 이르는‘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의 핵심 회사인 화천대유자산관리에 등장하는 법조인들의 이름을 보고,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언론에 보도되기 전 알지도 못했던 소규모의 회사에 권순일 전 대법관, 박영수 전 특별검사, 김수남 전 검찰총장, 강찬우 전 검사장 등 이름만 들어도 화려한, 법원과 검찰에서 고위직을 지낸 법조인들이 현직에서 퇴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화천대유와 인연을 맺은 것이다. 변호사가 법률 고문을 하는 것은 변호사 업무의 일환이기에 문제 삼을 수는 없지만,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한 내용들을 보면, 왜 법조 선배님들이 굳이 오해받을 수 있는 그 길을 거침없이 택한 것인지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권순일 전 대법관은 2020년 9월 대법관 퇴임 후 불과 두 달 만에 ‘화천대유’에서 월 1500만 원의 고문료를 받았다. 그리고 변호사 협회에 등록하지 않고 변호사의 직무를 수행했다는 혐의로 검찰에 고발되어 현재 피의자 신분이 되었다.

그런데 현재 더 큰 의혹의 핵심은, 권 전 대법관이 지난해 7월 이재명 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에서 무죄 의견을 개진했고, 결국 7대 5로 무죄가 선고되었는데, 당시 이재명 지사의 혐의 중 ‘대장동 개발사업’과 관련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 지사에 대한 2심 판결문에 ‘화천대유’란 단어가 3번이나 등장함에도 권 전 대법관은 판결이 선고되고 불과 4달 만에 화천대유에 법률고문이 되었고,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 기자가 2019년 7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권순일 전 대법관실을 8차례나 방문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재명 지사에 대한 대법원 판결의 합리성, 정당성에 대하여는 묻고 싶지 않다. 현재 김만배 기자가 이재명 지사의 무죄를 위해 권순일 전 대법관에게 재판거래를 한 것이 아니냐는 내용의 보도가 연일 쏟아지고 있지만, 그 정도로 사법 질서가 무너진 것은 결코 아닐 거라고 믿고 싶고 또 그래야만 한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그 회사 이름을 알게 되었다면 혹시라도 이후에 이러한 의혹에 휩싸이지 않도록 적어도 고문으로 이름을 올리지 말았어야 했다. 아무리 떳떳하다 할지라도 그런 제안을 거부했어야 했고, 이렇게 제기될 의혹의 여지조차도 겁내야 했다. 법조계는 또다시 전관예우, 재판거래라는 갖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사법제도의 신뢰와 권위는 또다시 흔들리고 있다.

변호사가 되어 처음 형사사건 변론을 맡아 피고인을 위해 무죄를 다투고, 선고기일 전날 잠 못 이루고 뒤척였던 때가 생각난다. 누군가를 위하여 법정에 서서 치열하게 변론을 하고, 그리고 재판 선고 결과에 따라 누군가의 인생이 좌지우지되는 것을 지켜볼 때, 새내기 법조인으로서 그 법정의 무게는 너무나도 무거웠다. 그런데 법조인들이 연차와 경력을 쌓아 가면서 그 법정의 무게를 조금씩 가볍게, 그리고 무뎌져서 지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변호사들은 선고 기일에는 법정에 불출석을 하고 피고인 홀로 선고를 듣는 것이 관례인데,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아무래도 그 선고를 지켜보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형사판결 법정에서 선고를 듣다 보면, 눈앞에서 피고인이 법정 구속이 되기도 하고, 구속되어 있던 피고인이 무죄 판결을 받고 눈물을 쏟기도 한다. 피고인의 가족들과 함께 법정 방청석에 앉아서 진행했던 사건의 선고결과를 직접 듣고 있노라면, 그 법정의 무게는 너무나도 무겁다. 그리고 법조인으로서 일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겁난다. 그렇지만 그래도 법조인들의 일은 그렇게 무겁게, 겁내면서, 스스로를 경계하면서 해야 한다. 법조인들이 혹여 제기될 의혹조차도 겁내면서 원칙에 따라 일을 할 때, 오직 법과 양심에 따른 판결이라는 신뢰가 생기고, 그래야 흔들렸던 사법 정의가 바로 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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