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대못'이라도 박아야 할 공공기관 2차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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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호 서울정치팀 부장

문재인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이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2017년 대선 공약과 국정운영 5개년 계획 등을 통해 거창한 비전을 쏟아낸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아쉬움이 클 것이다.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문제가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 국가균형발전 성과 아쉬움
‘소문난 잔치’로 그친 공공기관 2차 이전
차기정부에서 실행할 동력 살려 놓아야
‘노무현 계승자’로서 책임지는 모습 기대

이 사업은 2018년 9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수도권에 있는 공공기관을 추가로 지방으로 옮기겠다”면서 ‘122개’라는 숫자까지 제시하면서 시작됐다.

집권여당의 대표이자 문재인 정부의 실세가 내뱉은 말의 위력은 대단했다.

당시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122개 기관을 대상으로) 지금부터 분류 작업에 들어간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등이 분류 초안을 만들면 그것을 갖고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非) 수도권 14개 시·도는 내부에 태스크포스를 만들고 알짜 공공기관 유치를 위한 사전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 이후론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깜깜 무소식이었다.

각 시·도는 여당과 국토부를 통해 이전계획을 수소문했지만 명쾌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현 정부의 속내(또는 고민)가 드러난 것은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의 발언을 통해서였다.

김사열 균형발전위원장은 지난 9월 청와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공공기관 2차 지방 이전과 관련) 지난해 청와대에 로드맵을 보고했는데 정무적 판단 때문에 미뤄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균형발전위원회는 지난해 7월 문 대통령이 주재한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공공기관 이전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코로나19 장기화 등의 영향으로 논의의 진척이 없었다.

김부겸 국무총리도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 등을 통해 “조만간 문재인 정부의 의지와 방향을 밝힐 것”, “가을에 큰 가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공허한 목소리에 그쳤다.

그런데 임기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이제는 차기 대선 때문에 청와대가 정무적인 선택을 해야할 지점에 다달아버렸다.

임기가 6개월여 밖에 남지 않은 현 정부가 각 지역의 사활이 걸린 공공기관 이전을 위한 세부 방침을 확정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청와대도 모르지는 않는다.

특히 어느 지역에 어떤 공기업을 보내느냐는 핵심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대선을 앞두고 지역 갈등을 불러오는 부담을 감수하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고민은 여기서 다시 시작된다.

그렇다고 차기 정부가 할 일이라고 미뤄버리기에는 ‘노무현 계승자’인 문 대통령으로서는 책임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만에 하나 보수세력으로 정권이 교체된다면 공공기관 추가 이전 문제는 국정의 우선순위에서 밀릴 것이 뻔하다는 것이 청와대의 인식이다.

그래서 문 대통령의 선택은 하나 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공공기관 이전의 ‘디테일’은 놓치더라도 어느 정부든 문재인 정부의 유업을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표현대로 ‘대못’이라도 박아놔야 공공기관 이전이라는 대원칙을 거스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대못’을 얼마나 단단하게, 그렇지만 무리수가 없게 박느냐가 청와대 참모들의 고심일 것이다.

그런 단초를 제공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지난 14일 세종시에서 열린 ‘균형발전 성과와 초광역협력 지원전략 보고’와 문 대통령의 25일 국회 시정연설이었다.

하지만 ‘대못박기 프로젝트’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는지, 문 대통령은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다만 문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블랙홀이 되고 있는 수도권 집중현상과 지역 불균형도 풀지 못한 숙제”라면서 “정부는 마지막까지 미해결 과제들을 진전시키는데 전력을 다하고, 다음 정부로 노력이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국가균형발전 문제에 있어서는 미흡한 것이 많다는 문 대통령의 반성인 동시에 어떻게든 공공기관 2차이전의 추진동력만은 살려놓겠다는 약속으로 이해하고 싶다.

문 대통령이 ‘대못박기 프로젝트’를 당당하게 내놓을 시점이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허탈감에 빠진 비수도권 국민들의 애절한 기다림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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