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와 놀고 소나무숲에 눕고 절벽 위 정자서 가을을 낚았다…밀양 3색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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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은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덕분에 부산과 매우 가까워졌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를 타고 가면 불과 40분~1시간 만에 밀양에 도착할 수 있다. 고속도로 바로 인근에는 하루를 충분히 느긋하게 보낼 수 있는 자연과 풍광을 갖춘 유원지, 유적이 마련돼 있다. 최근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산외면 해바라기 꽃 단지와 오랜 역사, 전통을 자랑하는 기회송림, 월연정이다. 세 곳 모두 근처에 모여 있고, 차로 2~5분 거리여서 서두르지 않아도 여유있게 하루만에 다 돌아볼 수 있는 곳이다.


산외면 4만㎡에 해바라기 천지
허수아비와 함께 깔깔대며 산책

소나무 1만 그루 심은 긴늪 솔밭
소풍 명소에서 이젠 캠핑 성지로

밀양강·단장천 만나는 절벽 위
쌍경당·월연대 풍경은 황홀경

■산외면 해바라기 꽃 단지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리자마자 오른쪽으로 빠져 밀양대로 아래로 지나간다. 굴다리를 지나면 곧바로 갑자기 눈앞이 환해진다. 온 세상이 푸른색과 노란색으로 덮인 것 같다. 멀리 밀양강과 추화산 자락이 보이지 않으면 이곳이 지상인지 천국인지 헷갈릴 수도 있다.

천지를 황금색으로 물들인 이곳은 산외면 해바라기 꽃 단지다. 2018년에 처음 조성한 곳이지만 지리적으로 가까운 부산과 울산, 경남에서 가을의 풍경을 느끼기 위해 방문객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됐다. 총면적 4만㎡의 꽃 단지에는 봄이 되면 청보리와 수국이 자라고, 가을에는 해바라기와 코스모스, 국화가 꽃을 피운다.

해바라기들은 아주 크고 완벽하게 개화한 상태는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줄기가 짧은데다 꽃도 작아 보인다. 하지만 멀뚱하게 키만 큰 꽃보다는 작더라도 눈이 초롱초롱한 이런 꽃들이 더 다정하고 반갑다.

손님이 찾아왔는데도 해바라기들은 머리를 돌려 인사라도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모두 동쪽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구름 사이로 해가 잠시 머리를 비춘다. 그제야 이유를 깨달았다. 해바라기들은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해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해바라기 사진을 제대로 찍으려면 꽃 단지 입구에서 동쪽의 구석까지 걸어가야 한다. 끝에서 거꾸로 서쪽의 입구를 향해 걸어오면서 셔터를 누르면 비로소 해바라기들은 손을 흔들면서 환하게 미소를 지어준다.

꽃 단지 곳곳에는 ‘말 타기 놀이를 하는 어린이들’, 분홍색 나비, 다양한 모습의 허수아비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사이로 다정한 두 연인이 어깨를 맞잡고 걸어간다. 오랜 고향 친구로 보이는 여성들은 깔깔거리며 꽃 사이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이곳은 해바라기 꽃 단지이지만 코스모스의 풍경도 즐길 수 있다. 키 큰 코스모스가 아니라 땅바닥에 붙은 것처럼 아주 낮은 코스모스다. 어릴 때 학교를 오가면서 논두렁에서 보던 그런 옛 코스모스의 모습이다. 어떤 곳에서는 코스모스와 어린 해바라기가 서로 섞여 있다. 바람이 산들산들 불면 장난기가 동한 해바라기는 코스모스의 목을 툭 건드리며 깔깔 웃는다. 중년 남성이 강아지와 함께 코스모스 길에서 산책을 즐기고 있다. 그야말로 노래 가사처럼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걷고 있다.



■기회송림

기회송림은 긴늪 유원지라고도 부른다. 밀양 사람들은 이전부터 긴늪 솔밭이라고 불렀다. 옛날에는 밀양강이 범람해 인근 남기리 기회마을의 가옥과 농토를 망치는 일이 잦았다. 지역 주민들은 홍수를 막기 위해 강변에 방수림으로 소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했다. 그 나무들이 자라 숲을 이룬 게 기회송림이다. 이곳에는 최고 수령 120년의 소나무 1만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송림과 이어진 넓은 자갈밭 주변에는 밀양강이 S자 모양으로 흘러 절묘한 풍광을 이루고 있다.

기회송림은 30~40년 전에는 밀양의 초·중·고등학교 소풍 장소로 널리 이용되던 곳이다. 지금은 캠핑 장소로 유명해졌다. 하늘을 가린 소나무 덕분에 따가운 햇살을 피할 수 있는데다 여름에는 밀양강에서 물놀이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지겨워지면 밀양대로를 건너 시골마을의 한적한 풍경을 둘러봐도 괜찮다.

기회송림에 꽉 들어찬 소나무는 옛 모습 그대로다. 바싹 말라 바닥에 두껍게 깔린 솔잎과 솔방울이 숲의 오랜 연륜을 말해주고 있다. 숲 주변 산책로를 따라 한 바퀴 천천히 걸어본다. 어릴 때 이곳에 소풍을 오면 선생님들은 산책로 곳곳에 ‘보물’을 숨겨놓았다. 그걸 하나라도 찾으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니던 추억이 어제처럼 떠오른다.



■월연정

기회송림에서 밀산교를 건너 왼쪽으로 내려가면 영화 ‘똥개’ 촬영장소이기도 했던 용평터널이 나온다. 내부가 좁아 차 한대만 통과할 뿐 사람 통행은 불가능하지만, 묘하게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는 소문이 퍼져 많은 사람이 사진을 찍으러 찾아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용평터널을 지나자마자 왼쪽으로 방향을 꺾으면 밀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자리를 잡은 월연정이 나온다. 월연정은 조선 중종 때인 1520년 월연 이태가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지은 두 정자 쌍경대, 월연대 일대를 말한다.

두 곳은 추화산 동쪽 기슭, 밀양강과 단장천이 만나는 절벽 위에 만들어진 정자 겸 별장이다. 이름 그대로 강물에 비친 밝은 달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이다. ‘쌍경’은 ‘강물과 달이 맑은 게 거울 같다’는 뜻이고, ‘월연’은 ‘달빛이 고요히 내려앉는 연못’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철마다 느낌이 다르겠지만 가을의 월연정은 황홀경 그 자체다. 오랜 역사를 상징하는 짙은 갈색 나무로 된 정자, 건물을 에워싼 돌담과 흙담 황톳길, 그리고 다양한 색상으로 변하고 있는 각종 나무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가을의 향기를 흘려보내고 있다. 쌍경당과 월연대 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밀양강과 주변의 풍경은 흘러가는 세월마저 그 자리에 멈추게 한 것 같은 착각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태의 맏아들을 추모하려고 지은 ‘제헌(霽軒)’ 앞에서 한 여성이 그림 그리기에 심취하고 있다. 주변에 사람이 오는지 가는지 눈치도 못 채는 분위기다. 시간은 헌재 마루에 조용히 앉아 그녀가 작품 활동을 마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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