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꿈꾸는 예술터, 부산엔 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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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 문화부 부장

2019년 ‘수정아파트 프로젝트’. 50년을 훌쩍 넘긴 오래된 아파트 작은 방에서 아파트 주민인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자 인형극을 봤다. 옆방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모여 가족 팝업북 만들기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2020년 ‘빈방의 서사’. 다대포 포구 옆 빈집에 혼자 앉아 시간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했다. 초량동 골목 안 빈집 마당에서 눈을 감고 소리를 채집했다. 바람 소리, 새 소리, 자동차 소리 등을 본인이 느끼는 대로 종이 위에 그렸다.

예술가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지속적으로 시민 만날 공간 필요
다른 지역엔 전용공간 속속 건립
부산의 문화예술 인식 안타까워

2021년 ‘소행성 42PX+5H’. 깜깜한 교실 천장에 매달린 구슬에 손을 가까이 하니, 코로나 시대를 이야기하는 다른 나라 어린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뜨거워지는 지구를 상징하는 색색의 터널을 통과하면 비밀의 문이 열리고, 빨간 비가 내리는 미래가 연극으로 펼쳐졌다.

부산문화재단이 최근 3년 동안 선보인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들이다. 평범한 이웃의 이야기가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일상 공간에서 예술을 더 가까이 느끼게 한다. 예술을 통해 아이들이 오늘날 지구인이 겪는 위기를 생각하게 만든다. 짧게는 5일, 길게는 3주 정도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현장에서 지켜보며 생각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지난 주말 문화예술교육 단체들이 기획한 ‘예술교육 온종일 파티’가 열렸다. 행사에서 소개된 프로그램 중 ‘창의예술교육랩 AI 농악’이 있다. AI와 부산농악을 결합해 미래형 융합교육의 형태를 제시한 AI 농악은 2020년 첫선을 보였다. 공학자, 예술가, 인문학자, 교육자가 함께 개발한 이 프로그램을 취재할 때도 생각했다. ‘지속적으로 프로그램을 돌릴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폐교 같은 장소를 활용하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이런 점에서 옛 좌천초등학교에서 진행 중인 공간 문화예술교육 ‘소행성 42PX+5H’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동·청소년 대상의 예술체험·놀이·교육 콘텐츠를 폐교라는 공간과 접목해 ‘부산형 문화예술교육 전용공간’의 비전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교실부터 복도까지 폐교 1개 층을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미술, 무용, 연극, 영상, 문학 등 다양한 분야가 어우러져 아이들에게 색다른 문화예술 체험과 감각을 제공했다. 일방적인 교육이 아니라 예술을 놀이처럼 즐기면서 스스로의 예술성을 발견할 수 있게 했다.

지역 예술가들이 만든 창의적인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은 단기간 운영하고 끝내기에는 아까운 것이 많다. 좋은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새로운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가 열릴 수 있다. 최근 부산시는 2030년까지 시내에 어린이 복합문화공간 ‘들락날락’ 500곳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7천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그곳을 그냥 그런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공간으로 만들 것인지, 제대로 된 예술놀이·예술교육 공간으로 만들 것인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문화예술교육 전용 거점공간을 세우고, 그곳에서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범 운영하고, 각 지역의 공간에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하도록 하면 어떨까?

현재 부산에는 문화예술교육 전용공간이 없다. 문체부는 유휴공간을 활용한 문화예술교육센터 ‘꿈꾸는 예술터(이하 꿈터)’ 사업을 2018년 시작했다. 꿈터는 지역주민들이 생애주기별로 상시적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함께 누릴 수 있는 공간이다. 2019년 전주시 팔복예술공장에 전국 1호 꿈터가 개관했고, 지난해에는 성남시에도 문을 열었다. 현재 강릉시, 밀양시, 장수군, 청주시에 꿈터가 조성 중이고 고흥군, 인천 연수구, 창원시, 태백시, 포천시 5곳이 꿈터 조성지로 추가 선정됐다. 부산은 지난해 북구에서 꿈터 건립을 추진했지만 구의회의 제동에 무산됐다.

취재차 전주 팔복예술공장과 전주시립도서관 우주로1216을 방문했을 때 담당자들에게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폐공장을 매입해 팔복예술공장을 만든 전주시는 추가로 주변 부지를 매입해 예술공단화를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시립도서관 1개 층을 모두 트윈세대 전용공간으로 만든 우주로1216 담당자는 ‘공공의 장소에 적지 않은 공간을 12세에서 16세 트윈세대에게 기꺼이 내준 전주시민들의 지지’를 언급했다. 문화예술교육 전용공간의 존재만큼이나 전주시와 시민들의 인식이 부러웠다.

인구 340만 명의 부산광역시. 중요한 것은 도시의 규모가 아니라 ‘문화예술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가 아닐까?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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