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쓰시마 외교사절단 ‘문위행’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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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후 부산 남구 오륙도스카이워크 광장에서 부산초량왜관연구회 주관으로 열린 ‘제5회 문위행 순국 영령 추도제’. 부산초량왜관연구회 제공

조선 후기 대일 외교사절 문위행(問慰行)과 그것의 비극적 사건을 아시나요.

조선 정부가 에도의 막부 쇼군에게 보내는 사절이 통신사라면, 쓰시마 번주에게 파견한 공식 외교사절이 문위행이다(쓰시마에서는 ‘연례송사’와 ‘차왜’를 보내왔다). 문위행은 1632~1860년 모두 54회 파견됐는데 그중 2차례의 대형 해난사고가 일어났다.

1632~1860년 총 54회 파견
1703년·1766년 두 차례 참사
강풍 만나 205명 익사 사고
초량왜관연구회 ‘5회 추도제’
부산에 추도비 건립도 추진

첫 번째는 1703년(숙종 29년) 23번째 문위행 때 부산을 떠나 당일 쓰시마 와니우라항 근처에 이르렀을 때 강풍을 만나 정사 한천석을 비롯한 112명 전원이 익사한 사고였다. 두 번째는 1766년(영조 42년) 39번째 문위행 때 부산진을 출발해 오륙도를 얼마 지나지 않아 강풍에 103명을 태운 배가 파손되면서 10명만 구조된 채 정사 현태익을 비롯한 93명이 익사한 사고였다.

부산에서 문위행의 비극적 사건을 추모하는 사업이 벌어지고 있다. 부산초량왜관연구회(회장 강석환)는 30일 오후 4시 부산 남구 오륙도스카이워크 광장에서 ‘제5회 문위행 순국 영령 추도제’를 치렀다. 2차례 비극적 사건의 영령 205위의 애달픈 죽음을 위로하는 행사다.

현재 추도비는 쓰시마에 하나만 세워져 있다. 1995년 쓰시마 측은 와니우라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히타카쓰 한국전망대에 첫 번째 비극적 사건을 애도하는 비를 세웠다. ‘조선국역관사순란비’(朝鮮國譯官使殉亂碑)가 그것. 역관사(譯官使, 역관 사절)가 문위행 정사를 맡았음을 드러낸 비명이다. 부산초량왜관연구회는 지난 2016년부터 쓰시마 현지를 찾아 매년 추도제를 지내왔다. 코로나19 때문에 지난해 행사를 건너뛰면서 이번에 부산에서 제5회 추도제를 열게 된 거다.

그런데 부산에는 추도비가 없는 것이다. 부산초량왜관연구회 측은 “부산 앞바다에서 93명이 숨진 1766년의 두 번째 비극적 사건을 추도하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어 추도비 건립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당시 사고가 났을 때 영조는 “40여 년간 왕을 하면서 이렇게 큰일을 당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해변에 단을 설치해 외로운 넋을 위로하라”고 하명했다. 하지만 그 해변의 단은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세월 속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부산초량왜관연구회가 추도비를 건립에 나선 거다.

1766년 사고 때 정사 현태익과 부사 현태형은 사촌간이었는데 함께 숨졌다. 이날 추모제에는 두 사람의 후손과 한일친선협회 한일우호교류회 부산문화재단 부산남구청 관계자 등 40여 명이 참석했다. 강석환 부산초량왜관연구회장은 “추모제와 추도비 건립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문위행을 온전히 드러내면서 국제교류역사도시로서 부산의 역사성을 되살리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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