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래의 메타경제] 산학관과 지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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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대 글로벌경제학과 명예교수

새해 우리나라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의 신년사를 자세히 읽어 보았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미증유의 상황 속에서 기업들이 어떤 생각과 다짐으로 대처해 가려고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신년사의 상당 부분은 직원들과 주주를 비롯한 외부인들에게 기업의 비전을 전달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그런 속에서도 기업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총수들이 던지는 핵심 메시지에 주목했다.

메시지에 공통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혁신’이었다. ‘혁신’ 없이는 미래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는 것이 기본적 인식임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기업 여건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혁신은 오래전부터 기업은 물론 국가의 핵심 화두가 되어 왔다.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패러다임의 바뀜을 수반한 혁명적인 시대에 적응해 가기 위해서는 혁신을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산학관 모델에 지자체 상징 붙인 ‘지산학’
용어 바꿈에는 그만큼 책임도 따르는 법
시, 혁신·인재 양성 더 적극적 역할 해야

대기업 총수들이 혁신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주목한 것은 세 가지였다. 기술과 인재 그리고 조직문화의 개선이다. 매년 되풀이되어 강조된 것 같지만, 이 세 개의 단어 속에 기업의 미래가 압축돼 있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이 기술을 움직일 수 있는 인재를 확보하고, 새로운 기술과 인재들이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새로운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대기업 총수들의 메시지를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부산시의 새해 경제정책 발표를 접했다. ‘민생·혁신·미래’의 키워드가 제시됐는데, 혁신과 미래를 앞세웠던 기업 총수들의 메시지와 유사함이 먼저 다가왔다. 그리고 부산시는 혁신 전략으로 디지털, 지산학, 신산업을 제시했는데, 이 또한 기술과 인재 그리고 조직 쇄신을 제시했던 기업들의 방향과 상당 부분 오버랩되었다.

물론 기업 차원에서의 대응과 지방정부가 지향하는 바가 같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기업이나 지자체 모두 발전과 융성을 위한 방법을 찾는다는 점에서는 근본에서 동질성을 갖는다. 부산시가 새해 벽두에 내놓은 혁신을 대기업 총수들의 메시지로 거칠게 번역해 본다면 기술 개발과 인재 양성을 위해 지산학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바꿀 수 있다.

부산시의 정책 방향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지산학’이다. 중요성보다는 익숙하지 않은 때문이다. 지산학은 박형준 시장 취임 이후 쓰기 시작했는데, 이전에는 주로 ‘산학관’이라고 불렀다. 기술 발전과 인재 양성을 위한 주요 수단으로 산학협력이 강조된 것은 오래되었다. ‘산학’에 ‘정부’가 추가된 것이 산학관이고, 이것은 그동안 우리나라 산업육성의 주요 토대였다.

그러던 것을 지방자치단체를 앞에 놓은 지산학이라는 말로 부산시가 바꾸었다. 용어의 바꿈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 부산시도 지산학 협력 성과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 왔다. 지산학 협력 거버넌스 구축을 위해 시장이 대학을 방문하고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은 이제까지 없었던 일이다. 또 테크노파크가 중심이 되어 지산학 협력 브랜치를 개소한 것도 협력 틀의 구축을 위한 괜찮은 방안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지방자치단체를 상징하는 이름을 앞에 붙이면서 새로운 산학관 모델을 구축하려고 한다면 좀 더 나아가야 한다. 청년들 몇 명에 재정적 지원을 하고 대학의 혁신 노력을 격려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오늘날 인재 없는 지역발전은 상상할 수 없다. 이제 인재 양성은 지역의 핵심적인 산업정책의 하나가 되었다. 얼마 전 2022년도 정시 대학입시 지원 결과가 발표되었다. 지역 내 대학들의 예상 밖의 낮은 경쟁률에서 올해도 대규모 미달 사태가 예견된다. 지난해 큰 폭의 입학정원 감축에도 불구하고 경쟁률 반등을 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산을 비롯한 동남권이 전국에서 입시경쟁률이 가장 낮았다. 대학이 많은 것이 이유의 하나이긴 하지만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 더 큰 원인이다. 대학이 무너지는 것은 지역의 거대한 인프라의 한 축이 붕괴되는 것이고, 인력 양성에 뒤처지는 도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기업들은 부산을 더욱 찾지 않을 것이다.

대기업 총수들이 던진 신년 메시지에 비추어 볼 때, 부산시가 새해 벽두에 내놓은 경제 운용의 방향은 잘 정리되고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또한 지산학을 혁신의 주요한 축으로 제시한 것도 바람직한 방향이었다. 그러나 산학관을 지산학으로 부른 그만큼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정책에 담아내려는 의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혁신과 인재 양성에 부산시가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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