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50.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배치된 인공 자연, 김유정 ‘잠식된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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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1974~) 작가는 식물을 ‘연약하지만 집단을 이루며 강한 힘을 만들어내는 존재’로 보고, 작업의 소재로서 지속적으로 탐구해 왔다.

작가는 대지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자라는 식물이 아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건물의 정원에 서식하거나 인위적인 상품 사이에 위치한 화분 혹은 콘크리트 벽면을 뚫고 나오거나 살아가는 식물을 다룬다. 이를 통해 생명체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대변하여 표현한다. 그리고 식물들의 생존 방법을 사회에 속해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인간의 모습에 투영했다.

작가는 공간을 꾸미기 위해 놓인 식물, 인테리어 소품처럼 보이는 식물이지만 스스로 생명 활동을 지속하는 모습에서 예술과 생명의 관계성과 식물에게 부여된 새로운 서사성을 찾았다고 한다.

작가가 표현한 회색 조의 화면에서도 생명력을 가진 싱그러운 식물의 모습보다는 식물로 가득 채워진 실내 풍경에 집중하게 된다. 작품 ‘잠식된 정원’(2017)은 건물에 둘러싸인 식물로 뒤덮인 관상용 정원의 모습이다. 일상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익숙한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낯설고 차가운 풍경처럼 보인다.

화면 속 자연이나 식물의 모습은 자연의 존재라기보다는 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해 만들어지고 배치된 인공의 모습을 띠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모습이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을 보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여 만들어내는 인간의 역설적인 행위를 대변한 작품이다.

작가의 회화는 신체 행위로서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화면은 마치 흑백 조의 수묵화의 모습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석회석이 마르기 전에 긁어내듯 그려내는 프레스코 기법을 이용했다. 화면을 일일이 긁어내듯 그려내야 하는 수행적 작업을 통해 작가는 반대로 인간의 욕망에 대한 반성적 행위도 함께 담아내는 듯하다.

‘잠식된 정원’은 부산시립미술관의 현재 진행 중인 전시 ‘오노프(ONOOOFF)’에 출품되어 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전시 공간에서 작가가 만들어낸 식물에 잠식된 정원의 풍경을 찾아보기 바란다.

황서미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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