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삼의 타초경사(打草驚蛇)] 무당과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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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대 자유전공학부 특임교수

정치란 예나 지금이나 선택의 연속이다. 나라에 물난리가 났을 때 도성을 옮길 것인지 말 것인지, 외적의 침략에 전쟁으로 대응할지 화친을 택할 것인지는 국가의 명운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이다. 또 왕비의 뱃속에 든 아기가 아들일지 딸일지, 올해 농사가 풍년일까 흉년일까를 예측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먼저 알고 대비하는 것 역시 정치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대 국가에서 ‘점’은 중요한 업무였다. 점을 친다는 한자 ‘筮’(서)가 댓가지와 무당으로 구성되었듯, 점은 무당이 쳤다. 놀랍게도 원래는 무당이 임금이었다. 초창기 신라의 임금 명칭인 ‘차차웅’은 “곧 무당을 뜻한다”라는 증언이 바로 그렇다(김부식 ). 박혁거세, 남해차차웅, 석탈해 등은 모두 ‘무당 왕’인 것이다. 이 시대를 ‘제정일치’ 즉 제사와 정치가 하나로 통합된 시절이라고 한다.

한편 치료를 뜻하는 한자 ‘ ’(의) 밑부분에 ‘巫’(무)가 선명하듯 무당의 중요한 기능은 질병을 고치는 일이다. 고대 사회에서 무당의 역할은 사람들 질병을 치료하고 편안하게 죽음으로 인도하며 나라의 미래를 예측하고 어려움에 대처하는 등의 중차대한 일이었다. 무당의 황금시대였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 무당과 권력이 구분되는 시대가 도래한다. 갑골문은 거북이나 소뼈에 불로 지져서 그 갈라진 모양으로 길흉을 점치고 그 결과를 조각칼로 새겨서 남긴 기록이다. 가락국 수로왕 설화에 등장하는 ‘거북아 거북아, 대가리를 내어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는 노래가 무당=거북점=정치권력의 관련성을 압축하고 있다.

그런데 갑골문은 무당의 권력에 금이 간 반대 증거이기도 하다. 오늘날 건축물에 시공자 이름을 동판에 새겨 두듯, 무당의 예언이 틀릴 경우를 대비하여 점친 결과를 남겨 놓은 것이 갑골문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한 예언이 틀릴 때, 무당은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처지로 내몰리게 된다(오랜 가뭄의 희생물로 무당을 땡볕이나 불로 태워 죽이는 기록이 옛 전적에 종종 보인다). 지금 무당은 권력자가 아니라 권력에 부속된 한낱 기술 관료로 위축되고 있다.

결정적으로 무당이 멸망의 위기로까지 내몰린 것은 유교와 불교의 등장 때문이다. 무당은 신내림을 받아 그 귀신의 말을 공수함으로써 예언을 한다. 즉 무당의 힘은 그가 모시는 귀신의 위력에 달려 있다. 그런데 유교는 귀신이 바깥, 예컨대 하늘이나 땅, 산이나 물에 있지 아니하고 사람들 각자 마음속에 존재한다고 선언한다.

‘하느님의 명령이 곧 인간의 본성이다’(天命之謂性)라는 제1장이 표나게 그런 뜻을 드러낸다. 이제 가뭄과 홍수는 하늘 신이나 물의 귀신 탓이 아니라, 군주 본인의 부덕함 때문이다. 정치란 군주가 자기 행동을 반성하고 잘못을 성찰하는 것이 되었다. 임금이 자연의 노여움을 해소하는 방법은 반찬을 줄여 반성을 표현하고 억울한 죄수를 풀어주어 잘못을 고치는 일이다.

불교의 도래는 무당에게 치명타였다. 부처라는 강력한 귀신이 ‘현재는 과거의 결과요, 미래는 현재의 단서’라는 인과법으로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푸닥거리로 귀신을 다독이는 무당을 퇴출하고 말았다. 그 무당 퇴출의 흔적이 ‘연오랑세오녀’ 설화이거니와, 이제 무당은 시골에서 ‘거사’가 되거나 ‘화랭이’로 유랑 연예인이 되거나 민중들 속에서 ‘박수’로 연명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무당의 생명력은 끈질겼다. 민중들 속에서 민초의 아픔을 위무하는 치유 활동이 그들의 태생적 역할이기 때문이다. 즉 무당은 민중과 더불어 아픔과 슬픔을 함께하는 ‘세속적 공동성’을 발휘함으로써 살아남았다.

진짜 무당은 타인의 아픔에 민감하다. 남의 고통에 깊숙이 들어가 그 아픔을 자기가 안아서 대신 앓는 사람이 참 무당이다. 무당이 되려고 할 적에 무병(巫病)을 지독하게 앓는 까닭이며 일곱 날 동안 천상 여행을 다녀오는 이유다.(엘리아데 ) 역시 치유를 뜻하는 ‘ ’ 자에 무당이 들어 있는 까닭이자 토속어로 ‘성인(聖人)’이 무당의 높임말인 이유다. ‘聖’(성)이라는 한자를 해체하여 보면, 귀를 쫑긋 세워 남의 말을 경청하는 모습이니, 이게 진짜 무당이다.

그렇다면 선무당이란 무엇인가? 남의 아픔에는 무관심하고 잿밥에 마음이 가 있는 자다. 예나 지금이나 선무당은 정치권력을 탐한다. 귀신의 영매가 되어 힘의 맛을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 바깥의 귀신에게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살리고 자기를 죽이는 자가 참 무당이라면, ‘선무당은 사람을 잡는다.’

선진국이 되었네 마네 하는 나라의 대통령 선거에 난데없는 무당 타령인지라 그 내력을 살펴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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