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인문학 기행] 순교자의 산 몽마르트르…목 잘린 파리 첫 주교의 부활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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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인문학 기행-프랑스] 몽마르트르 언덕


몽마르트르 언덕. 몽마르트르 언덕.

■로마에서 온 선교사


3세기 중엽의 어느 날이었다. 빨갛게 노을이 저물어가는 센 강변에 허름한 옷차림의 남자 서너 명이 나타났다. 그들의 얼굴은 피로에 찌들어 초췌해 보였다.

옷은 얼마나 오래 입었는지 먼지투성이에다 곳곳에 구멍이 나 있었다. 옷을 입었다기보다는 차라리 낡은 헝겊을 걸치고 있다고 하는 게 더 어울릴 지경이었다. 손에는 지팡이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얼마나 오래 사용했는지 지팡이 끝 부분은 다 닳아 너덜거릴 정도였다.

남자들이 서 있는 강 건너편에는 섬이 하나 보였다. 센 강 한가운데에 버티고 서 있는 시떼 섬이었다. BC 1세기 무렵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던 베르킨게토릭스가 이끄는 갈리아 족이 오래 전부터 살고 있던 섬이었다.

“엘레우테리우스, 저기가 바로 우리의 목적지인 시떼 섬인 모양이군.”

“그런 것 같습니다. 로마에서 들은 바로는 지대가 낮아서 홍수가 자주 난다고 하더군요. 저기 위쪽에 로마군 진지가 보입니다.”

센 강에 모습을 나타낸 남자들은 로마에서 파비아노 교황이 보낸 이들이었다. 그들의 이름은 생드니, 엘레우테리우스, 루스티쿠스 등이었다. 교황은 기독교 세력이 약한 프랑스 파리에 기독교를 전파하라며 생드니 일행을 보낸 것이었다.

“루스티쿠스, 이곳에 기독교도가 몇 명이나 될까?”

“글쎄요. 제가 로마에서 듣기로는 거의 없다고 하더군요.”

“전도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겠군.”


센 강. 센 강.

생드니 일행은 시떼 섬으로 건너가기 위해 나무로 만든 다리로 갔다. 그곳에서는 로마 병사들이 중무장한 채 오가는 사람들을 일일이 살펴보고 있었다. 생드니 일행이 다리 앞에 이르자 한 병사가 다가왔다. 그는 칼을 들어 생드니 일행을 멈춰 세운 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쭉 훑어보았다.

“당신들은 처음 보는데, 도대체 어디서 온 사람들이오?”

생드니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병사에게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냈다.

“우리는 로마에서 왔습니다. 저는 생드니라고 합니다. 기독교도이지요. 파리에 기독교를 전파하라는 교황의 명을 받고 먼 길을 걸어왔답니다.”

“기독교도라고? 로마에서 항상 문제만 일으키는 기독교도란 말이지? 앞으로 골치 아프겠군. 잠깐 여기서 기다리시오. 대장님께 가서 말씀을 드리고 와야겠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으니 저기 멀찍이 앉아서 기다리도록 하시오.”

병사는 칼을 집어넣은 뒤 말을 타고 다리를 건너갔다. 생드니는, 로마에서 온 기독교도라고 괜히 말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다리 앞 풀밭에 앉았다. 벌써 며칠째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배가 몹시 고팠다. 로마에서 출발한 이후 여러 달 동안 음식을 입에 넣은 게 며칠이나 되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잠시 후 나무다리 건너편에서 말 여러 마리가 달려왔다. 빨간 망토를 두른 남자가 앞장섰고, 아까 생드니 일행을 살펴봤던 병사는 가장 뒤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망토를 한 남자는 병사들을 이끄는 대장쯤으로 보였다. 그는 말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생드니 일행에게로 다가와 굳은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당신들, 기독교도라고?”

생드니는 힘겹게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말 바로 앞에 섰다.

“그렇습니다. 로마에서 여러 달 걸어서 여기까지 왔답니다. 귀하는 뉘신지요?”

“나는 파리에 주둔 중인 로마군 총사령관 막시무스요.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거지?”

“파리에 기독교를 전도하러 왔습니다. 야만인들의 영혼에 고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게 우리들이 여기 온 뜻이랍니다.”

“당신들이 기독교를 전도하는 말든 나는 상관하지 않겠소. 하지만 갈리아 족을 선동한다든지, 아니면 다른 쓸 데 없는 행동을 해서 혼란을 일으킨다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내 말을 명심하도록 하시오.”

“우리는 종교 전도 외에는 다른 행동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할 거라고 기대하겠소. 경비병. 이들이 다리를 건너게 해줘라.”

생드니는 막시무스에게 미소와 함께 가벼운 목례를 건네고 다리 쪽으로 걸어갔다. 엘레우테리우스, 루스티쿠스도 막시무스에게 따뜻한 미소를 남긴 뒤 생드니의 뒤를 따랐다. 이렇게 해서 생드니는 파리의 첫 번째 주교가 되었다.


시떼 섬. 시떼 섬.

■파리의 첫 순교자


250년, 또는 258년, 또는 261년의 어느 날이었다. 파리의 나지막한 언덕에 로마군 병사 수백 명이 옆으로 길게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로마군 사령관 막시무스가 심각한 표정을 한 채 그들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었다. 병사들에게서 1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두 팔을 등 뒤로 결박당한 채 무릎을 꿇고 앉은 사람들이 있었다. 수년 전 갈리아 족에게 기독교를 전도하기 위해 로마에서 건너왔던 생드니와 그 일행들이었다. 병사들 뒤편 20m 정도 거리에는 갈리아 족 수백 명이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일부 여자들은 눈물을 흘렸다.

막시무스는 지휘봉으로 손바닥을 톡톡 두들기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는 뒤쪽에 있는 갈리아 족을 한 번 둘러본 뒤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 생드니 앞에 섰다. 그는 한쪽 무릎을 구부려 생드니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생드니의 턱을 들어올렸다.

“선생, 당신이 처음 여기에 왔을 때 내가 했던 경고를 기억하시오? 절대 소동을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지내라는….”

생드니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막시무스의 눈을 쳐다보았다. 생드니가 갑자기 눈을 맞추자, 막시무스는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어 턱을 받쳤던 손을 치워 버렸다.

“왜 내 눈을 그렇게 쳐다보는 거요?”

“당신은 말은 거칠게 하지만 눈을 보니 정말 맑은 사람이군요.”

“엉뚱한 소리는 하지 마시오. 왜 내 경고를 무시했는지 대답하라니까.”

“저는 파리에서 소동을 피운 적이 없습니다. 갈리아 족의 정신을 교화시킨 게 전부랍니다. 그런데 그것을 소동이라고 하니 안타깝군요.”

“당신이 전도를 한답시고 수십, 수백 명을 모아 선동적인 말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라는 보고를 받았소.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느니, 하느님의 사랑만이 영혼을 구할 수 있다느니 하면서 로마 제국의 안녕을 위협하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했다더군.”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바라본 파리 시내.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바라본 파리 시내.

생드니는 파리에서 갈리아 족을 상대로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설파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갈리아 족은 그의 성실성과 진지함에 감동 받아 하나둘 씩 기독교도가 되기 시작했다. 그 수가 많아져 나중에는 수천 명에 이르게 됐다. 생드니는 적게는 수백 명, 많게는 수천 명의 갈리아 족 신도들을 모아 시떼 섬 한가운데에서 예배를 드리곤 했다. 그때마다 황제의 자비보다는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설교했다.

신도가 점점 많아지면서 로마 제국의 통치에 반감을 갖는 갈리아 족 사람들도 하나 둘 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생드니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막시무스는 “신도가 많아져 통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첩보를 연이어 보고 받으며 반란이 일어날까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는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반란의 씨앗을 제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도들에게 설교를 하던 생드니 일행을 잡아들였던 것이다.

“당신이 파리를 떠나 로마로 돌아간다면 목숨을 살려주겠소. 나도 같은 이탈리아 사람인 당신들을 죽이기를 원하지는 않는다오. 어떻게 하겠소. 나의 마지막 제안을 받아들이겠소?”

막시무스는 한편으로는 간절한 표정으로, 한편으로는 단호한 표정으로 생드니의 얼굴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 생드니는 다시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나님이 제게 ‘갈리아 족의 마음에 사랑과 구원의 씨를 뿌리도록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 임무를 저버리고 떠날 수 있겠습니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터이니, 여기서 그만 소란을 중지하시는 게 어떨지요?”

“당신은 나의 마지막 부탁이자 경고를 끝내 무시하는군. 할 수 없소. 로마제국의 이익을 해치는 자를 그냥 둘 수 없는 게 나의 임무이지. 당신의 목을 벨 수밖에 없소. 다시 한 번 이야기하겠소. 내 제안을 받아들이시오.”

“당신은 정말 선량한 분이시군요.”

막시무스는 생드니가 엉뚱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화가 난 듯이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그는 지휘봉으로 손바닥을 톡톡 두들겼다.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오른손을 위로 올렸다가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향하게 손을 뒤집었다.

막시무스의 엄지손가락이 아래로 향하자 병사들 가운데에 서 있던 도부수가 앞으로 뛰어나갔다. 다른 병사 두 명도 함께 달려 나갔다. 병사들은 생드니의 양팔을 잡아 바로 앉힌 뒤 뒤로 물러섰다. 도부수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칼을 높이 들어 그대로 내리쳤다. 생드니의 머리는 단칼에 잘려 땅으로 굴러 떨어졌다. 도부수는 이어 엘레우테리우스, 루스티쿠스의 목도 인정사정없이 잘라버렸다.

생드니 일행의 참수형이 벌어진 곳은 몽 마티 언덕이었다. 나중에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이름이 바뀐 곳이었다. 몽마르트르라는 이름은 ‘순교자의 산’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샤크르 쾨르 성당. 샤크르 쾨르 성당.

■목 잘린 생드니의 행진


“생드니야, 일어나라. 잘린 목의 눈이 향하는 곳으로 가도록 하라. 네 눈이 정말 감기는 곳에서 너의 임무는 종료될 것이리라.”

생드니는 눈을 번쩍 떴다. 지난 밤 엘레우테리우스, 루스티쿠스와 함께 잠을 자던 오두막에서 들었던 목소리가 다시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 목소리는 그를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고 불렀다.

생드니는 천사의 목소리가 실제인지 환청인지 헷갈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히 몸은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눈에 보이는 것은 땅바닥뿐이었다. 생드니는 어떻게 된 일인지 의아했다. 아무리 몸을 돌려도 시선은 여전히 한 곳에 고정돼 있었다. 생드니는 그제야 천사가 전날 밤 했던 말을 떠올렸다. 천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너는 내일 목을 잘리리라. 그러나 신비한 힘을 얻어 하루를 더 살 것이다. 그 목을 들고 먼 여행을 하게 되리라.’

생드니는 그제야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정리할 수 있었다.

‘밤에 천사가 찾아와 내가 참수형을 당할 것이라 예언했었지. 막시무스 사령관은 낮에 내 목을 잘랐고…. 나는 인간세상의 기준으로 하면 죽어야 하지만, 신비한 힘으로 아직 살아 있는 것이구나.’

생드니는 무릎을 꿇었다. 손을 더듬어 잘린 목을 찾았다. 다행히 목은 몸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는 목을 들고 일어섰다. 땅바닥만이 아니라 다른 장소도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은 이른 아침인 듯 했다.

‘참수형을 당하고 하루가 지난 모양이구나.’


목 잘린 생드니. 목 잘린 생드니.

그는 목을 든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엘레우테리우스와 루스티쿠스는 여전히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엘레우테리우스, 루스티쿠스. 일어나라. 오늘은 갈 길이 멀다.”

생드니의 음성을 들은 두 사람도 똑같은 혼란을 겪은 뒤 목을 들고 일어섰다. 세 사람은 나란히 서서 목을 든 채 길을 걸었다. 세 사람이 살아났다는 소문이 퍼지자, 시떼 섬에서는 난리가 났다. 갈리아 족 사람들뿐만 아니라 로마군 병사들도 이 경이로운 모습을 지켜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부 갈리아 족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고, 다른 일부는 땅에 머리를 박고 엎드려 고개를 들지 못했다.

생드니는 센 강으로 가서 몸과 머리에 묻은 피를 씻었다. 그리고 시떼 섬으로 들어갈 때 이용했던 다리를 다시 건너 시떼 섬 밖으로 나갔다. 그들의 뒤로는 수많은 갈리아 족 사람들과 일부 로마군 병사들이 따르고 있었다.

생드니는 약 10㎞를 걸어 한 작은 마을까지 갔다. 그는 그곳에서 머리를 옆구리에 낀 채 마을 사람들에게 설교를 했다. 해가 서산 너머로 넘어가자,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생드니 일행이 생을 마감한 곳은 바로 지금의 생드니였다. 생드니 일행이 생을 마감한 자리에는 생드니 성당이 세워져 있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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