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지방소멸’ 위험의 허와 실, 그리고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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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인구 쓰나미, 인구지진, 지방소멸 같은 자극적인 단어가 범람하고 있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없어진다는 소멸(消滅)의 뜻과 순식간에 모든 것을 휩쓸어 가 버리는 쓰나미를 연상하니 섬뜩해진다. 위기의식은 신속한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과장되고 과도한 위기의식은 자칫 설익거나 그릇된 대처라는 우(愚)를 범하게 한다.

‘지방소멸’이라는 용어는 2014년 일본의 마스다 히로야(전 일본 총무대신)가 출간한 저서에서 처음 사용했다. 2040년까지 일본 기초지자체의 절반인 896개가 소멸한다는 주장으로 충격에 빠뜨렸다. 한국에서는 고용정보원에서 마스다의 지수를 활용해 지역별 ‘지방소멸위험지수’를 발표했고, 그 후 언론은 지방소멸 관련 보도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2021년 기준, 전국 228개 시군구 중에서 106곳(46.5%)이 소멸 위험지역, 36곳이 소멸 고(高)위험지역에 해당한다고 한다. 실로 위협적이다. 대도시인 부산조차 영도구, 동구, 중구, 서구 4곳이 소멸 위험지역에 포함됐다.

지방소멸위험지수 근거 너무 단순
고령자 많고 젊은 여성 적으면 위험
이런 논리, 정책에도 영향 미쳐 곤란

수도권 집중·불균형 문제 해소 중요
어디에 살든 안정적·윤택한 삶 필요
복수주소제 등 다양한 전략 검토를



그런데 지방소멸을 기정사실로 간주해도 무방한가. 그 근거가 되는 지방소멸위험지수는 타당한가. 소멸 위험지역 주민에게 낙인과 불안을 유포할 수 있는 이 지수는 지극히 단순하다. 20~39세 여성 수를 65세 이상 고령자 수로 나눈 값이다. 1보다 작으면 소멸 주의, 0.5보다 작으면 소멸 위험, 0.2보다 작으면 소멸 고위험지역이 된다. 고령자가 많은 것, 젊은 여성이 적은 것이 지방소멸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위험하다. 고령자는 지역의 활력, 지속을 위협한다는 그릇된 관념, 여성은 출산으로 지역에 기여하는 존재라는 편협한 관념을 유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구 이동, 지역 활력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요소는 배제한 채, 사망과 출산이라는 자연 증감만 고려한 단순 계산법으로 지방소멸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문제다. 이런 논리는 실제 정책에도 영향을 미쳐, 청년 인구 유입, 출산율 제고를 위한 단편적이고 일률적인 대책으로 이어지게 했다. 청년에 집중한 탓에 중장년, 고령층은 정책에서 소외됐고, 유입에 집중한 탓에 정작 유출을 막기 위한 대책에는 소홀했다. 지역의 활력을 높이고 모든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전략을 고민하기보다는, 단기적으로 숫자를 높이는 실적 경쟁에 매몰됐다.

그런데 인구 감소, 지방 쇠퇴가 그 지역의 탓인가. 근본적으로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살고 교육·의료·문화 인프라가 밀집된 불균형 상황을 해소하지 않는 한, 수도권 영역을 확장하는 신도시 개발이 계속되는 한, 어떤 지방소멸 대응책도 무용하다. 정부는 지자체별 인구수를 비교하며 불필요한 제로섬 경쟁을 유발하기보다, 수도권 집중·불균형 발전 문제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먼저 내놔야 한다. ‘인구 감소=지방소멸’이라는 도식 대신, 인구 감소가 생활 인프라 축소, 주민 불편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인구 감소지역 주민의 불편은 인구 감소 탓이 아니라, 대응 미비 탓이다.

뉴노멀 시대, 인구에 대한 관점 전환도 필요하다. 고성장, 노동집약 산업화 시대와 저성장, 지능정보 산업 시대 인구에 대한 관점은 같을 수 없다. 지금은 1명이 더 많은 역량을 가진 시대가 됐다.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인구를 늘릴 것인가에서, 어떻게 하면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일 것인가, 삶의 질을 균등하게 만들 것인가로. 수도권, 비수도권, 도시, 농어촌 어디에 살든지 일, 여가, 의료, 교육, 돌봄 등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윤택하게 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을 보편적으로, 동등하게 누릴 수 있다면, 서울을, 도시를 고집할 이유는 없다. 라이프 스타일, 취향, 선호 따라 거주지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소멸위험지수 대신 ‘지역웰빙지수’가 필요하다.

이미 이동하는 삶이 대세가 됐다. 유연근무, 재택근무의 확산, 소확행, 워라밸 중시 등으로 일주일 중 반반씩 다른 지역에서 사는 사람도 늘고 있다. 독일처럼 주거주지, 부거주지를 허용하는 복수주소제 같은 유연 주소제 도입 검토가 필요하다. 지방 행·재정지원 기준을 정주인구 대신 생활인구로 변경하자는 제안도 같은 맥락이다. 지역의 활력이 청년층 유입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생각 또한 바뀌어야 한다. 신중년, 고령자, 외국인 등 다양한 주체가 지역의 활력을 만들어 내는 주체가 될 수 있다. 지역의 활력은 단순히 인구 유입, 개발사업 유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와 무관하게 다양한 주민이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으로 만들어진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질수록, 과도한 위기의식에 잠식되기보다 냉철하게 상황과 문제를 진단하고, 여러 주체가 함께 참여해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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