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시행 전이니 눈감자고?… 경찰, 스토킹처벌법 자의적 해석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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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스토킹처벌법) 시행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 피해 사이에 수개월이 흘렀다면 스토킹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소극적으로 대응해 논란이 인다. 스토킹 피해자는 두 번이나 경찰에 피해를 알렸지만, 경찰이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고 있다며 불안해한다. 법조계에서는 해당 사건은 지속적인 스토킹 피해로 판단할 수 있고, 경찰이 피해자 중심으로 법리 해석을 해야 한다며 비판한다.


지난해 10월 법 시행 전과 후
행위 연속성 놓고 적용 여부 논란
두차례 피해 진정에도 수사 부진
법조계 “충분히 스토킹 처벌 가능”
피해자 중심 적극 대처 필요 지적

부산 기장경찰서는 지난해 12월 여성 A 씨로부터 스토킹 피해 진정을 접수하고 남성 B 씨를 수사 중이라고 14일 밝혔다. A 씨에 따르면, B 씨는 2020년 4월부터 5개월간 A 씨가 운영하는 왁싱숍에서 7차례 미용 시술을 받았다. 그동안 B 씨는 A 씨에게 여러 차례 사생활에 대한 질문을 하거나 선물을 전달했다. 부담을 느낀 A 씨는 시술을 거절하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후에도 B 씨는 자신의 SNS에 무단도용한 A 씨의 사진을 계속해서 올리고 교제 요구와 욕설, 성적 표현이 담긴 글까지 적었다. 심지어 A 씨의 지인을 찾아가 A 씨 남자친구 행세를 하거나 A 씨 집이나 가게 근처의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리기도 했다.

스토킹 수위가 점차 심해지자 A 씨는 지난해 3월 경찰에 B 씨를 처벌해 달라며 처음으로 진정을 넣었다. 경찰은 B 씨를 제대로 처벌하기 위해선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에 고소를 하라고 권유했고 A 씨는 진정을 취하했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전 스토킹 범죄 처벌은 경범죄 처벌법상 10만 원 이하의 범칙금 처분에 그쳤다. 지난해 10월 21일 시행된 스토킹처벌법에 따르면 반복적으로 스토킹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A 씨의 진정 관련 경찰의 연락을 받고 한동안 연락이 없던 B 씨는 지난해 12월 A 씨에게 다시 일방적인 문자를 보냈다. 9개월 만이었다.

A 씨는 이번에는 스토킹처벌법을 적용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다시 경찰서를 찾았지만,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답답한 마음에 경찰서 청문감사실을 찾아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경찰청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뒤에야 경찰은 B 씨를 스토킹처벌법으로 처벌하기 힘들겠다고 알려왔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행위를 이전 행위와 연속된 스토킹으로 보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기장경찰서 관계자는 “B 씨의 가장 최근의 연락은 지난해 12월로, 그 이전 연락인 지난해 3월과는 약 9개월 정도 간격이 있어 스토킹처벌법의 핵심인 연속적이고 지속적인 행위라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A 씨는 “민사로 넣으라고 했다가 기소는 할 수 있다고 하는 등 경찰의 말이 계속 바뀌더니 이제야 스토킹처벌법 적용이 힘들다면 누구를 믿어야 하느냐”며 “극단적인 스토킹 피해 사건들을 보면 너무 불안하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경찰이 피해자 보호라는 스토킹처벌법의 입법 취지를 외면하고 법을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해석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해 3월 게임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여성과 어머니 등 세 모녀를 살해한 김태현 사건처럼 참혹한 스토킹 피해를 방지하려면 피해자 입장에서 더욱 적극적인 수사와 대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백혜랑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는 “여러 행위가 동일한 피해자를 대상으로 계속해서 이뤄졌으면 마지막 범행을 기준으로 전체를 판단해야 한다”면서 “이번 사례는 별개의 단독 행위가 아닌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행위로 판단해 스토킹으로 보는 것에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편세린 변호사(법무법인 오성)도 “소급적용을 하지 않더라도 스토킹처벌법 이후 연락은 이전부터 이어진 스토킹으로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장경찰서 관계자는 “스토킹처벌법에 대한 판례가 적어 적용 여부에 대해 구체적인 법률 검토가 필요하지만 B 씨가 변호사를 선임해 일단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현·나웅기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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