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삼월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박서영(1968~2018)

꽃잎들은 긴 바닥과 찰나의 허공이라는 계절을 지나는 중이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왜 그리 짧게 살다 떠나는지. 변하고 돌아서는지. 무덤 속에서 튀어 올라오는 사랑과 입맞춤을 한다. 나는 북쪽에 살아. 피부는 들판의 풀들처럼 자라면서 늙어가고, 가끔은 잠적하지. 그리곤 튀어오르지. 무덤 위에 피는 꽃처럼 잠시 아름다워지기도 해. 생일(生日)과 기일(忌日)이여. 점점 더 멀어져라. 나의 울음과 너의 울음이 다르다. 저녁과 아침 사이 밤이여. 점점 더 캄캄해져라. 나는 남쪽에도 살고 북쪽에도 산다. 꽃 피고 지고. 밤하늘이 바닥까지 내려와 있다. 바닥에 흐르는 은하수. 바닥의 애벌레좌. 얼룩진 한쪽 벽 구석의 거미 좌. 이젠 천천히 기어 너에게 간다. 길의 점막에 달라붙은 꽃잎들. 바닥을 물고 빠는 저 불쌍한 입술들. 벚꽃나무가 핀 너의 가슴은 백야의 시간을 지나는 중이다. -시집(2019) 중에서

삼월이 왔을 때 상실을 겪은 시인은 바닥에 은하수를 흐르게 하고 ‘애벌레 좌’ ‘거미좌’ 같은 별자리를 창조한다. 시는 없던 세계를 선점해 가는 것. 지난겨울처럼 죽음은 다른 차원으로 가버리는 것일 뿐이라고 말하던 이가 있었다. 그게 위로가 될까. ‘내가 사랑한 사람들은 왜 그리 빨리 가버리는지’ 봄에 폈다 지는 꽃들처럼 하늘 전체를 덮어오는 봄의 파고 아래에선 먼저 떠난 사람들을 생각하며 사무쳐 봐도 좋겠다. 이 시의 언술처럼 삼월이 백야와 바닥과 허공에서 뼈와 살을 가져와 육체를 갖기 시작했다. 다시 봄이 왔다. 시는 봄처럼 남쪽에도 살고 북쪽에도 산다. 성윤석 시인

※ 필자 약력: 1990년 등단. 시집 등 5권, 산문집 출간.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