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눈 뜨고 코 베인 '여행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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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국 경제부 유통팀장

5만 483명 vs 342명.

좀처럼 가늠이 가지 않죠? 이 숫자의 정체는 지난 설 연휴 인천공항과 김해공항에서 해외로 떠난 탑승객 수 차이입니다.

오미크론의 창궐로 부산과 울산, 경남의 시민은 숨을 죽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낭만을 찾아 유럽행 비행기에 오르려던 우리 부부의 결혼 10주년 계획도 자연스럽게 없던 일이 됐으니 저도 그 중 한 사람이겠네요.

정말, 대한민국 국민이면 다들 그렇게 사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부울경 시민의 현실 인식이었는지요.

인천공항은 오미크론의 확산에도 지난해 설 연휴와 비교해 국제선 출국자가 배 가까이 늘었답니다. 설 연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월 28일부터 30일까지는 인천공항에서는 사흘 연속 하루 평균 국제선 탑승객 수가 1만 명을 넘어섰고요.

중대본의 엄포에 해외여행은 언감생심 그림의 떡인줄로만 알던 동남권 시민으로서는 참 놀라운 광경이었습니다.

애초에 국제선 노선이 죄다 막혀 있고 그나마 살아남은 칭다오, 사이판, 괌은 주 1회 운항으로 묶여 있으니 김해공항에서는 의무 격리를 무릅쓰고 비행기에 올라도 마땅히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수도권은 어땠나요? 인천공항은 이미 80개가 넘는 해외 노선이 다시 부활했다는 걸, 부산 관광업계는 전멸 직전인데 수도권 대형 여행사는 바닥을 치고 서서히 출근 직원을 늘려오고 있다는 걸 취재하다 알게 됐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핑계로 동남권 시민만 4개월이 넘도록 여행의 자유를 뺏긴 셈입니다.

모든 책임은 김해공항의 관문을 꽁꽁 묶어두고 주1회 운항을 고집한 국토부와 중대본에 있습니다. 에어부산과 부산관광협회 등의 업계 반발이 빗발치자 생색내 듯 이달부터 사이판 노선의 주 2회 운항을 허용한 게 이들입니다.

괌 노선도 사라져 겨우 2개 노선 남은 초라한 국제공항이 김해공항입니다. 그토록 묶어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공항의 방역 인력이 모자랐다고 하기에도, 해외에서 유입되는 확진자를 막기위해서였다고 하기에도 어딘가 부족한 변명입니다.

결국, 국토부와 중대본의 고집은 이 바쁜 와중에 지방까지 신경쓸 여유 없으니 인천 와서 출국하려면 하고, 싫으면 말라는 ‘배짱 행정’이었다는 말 밖에는 설명이 안 됩니다.

이달 김해공항에서 날아오르려던 첫 유럽 장거리 노선인 핀에어의 헬싱키 노선도 운항 개시 결정을 결국 7월로 미뤘습니다. 주 1회 운항으로 모객이 안되서 괌 노선이 운항 중단에 들어갔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죠.

수도권 인구가 대한민국의 절반을 넘어섰다는 건 다 압니다. 하지만 설 연휴 수도권과 동남권에서 출국을 원한 사람 수가 100배 이상 차이가 나는 건 정말 수요가 100분의 1이라서 일까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봅시다.

입만 열면 ‘지방공항은 항공 수요가 낮다’는 논리로 ‘only 인천공항’을 외치는 게 중앙정부입니다. 행정 편의로 똘똘 뭉친 그들의 얄팍한 논리에 당연한 내 권리가 짓밟혔다는 사실에 개운치 않은 요즘입니다. k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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