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오돈수’ 성철선(禪) 핵심 담은 책, 10년간 궁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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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독 선문정로’ 펴낸 강경구 교수

강경구 동의대 중국어과 교수가 <정독(精讀) 선문정로>(장경각)를 냈다. <선문정로(禪門正路)>는 성철(1912~1993) 스님이 “부처님 밥값 했다”며 1981년에 낸 책이다. 이 책은 돈점 논쟁을 거세게 일으켰던 책이다. 강 교수는 성철 스님의 법을 전하는 도량인 부산의 고심정사 불교대학에서 15년간 강의했다. <선문정로> 해석은 10년이 걸렸다. 고심정사 주지이자 성철 스님 상좌였던 원택 스님의 격려에 힘입었다. 강 교수의 연구실을 찾아 ‘이뭣고’를 물어봤다.

지눌의 ‘돈오점수’ 반복적 비판
지눌 아닌 ‘선방 얼치기’ 겨눈 것
실참실오론 등 3대 종지 소개
성철 이해 넘어 성철 되어 봐야

-이 책은 어떤 책인가.

“돈오돈수로 알려진 성철선의 핵심이 들어 있다. 고려 지눌 스님의 돈오점수를 반복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돈오점수에는 유심(有心)의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깨달았으나 계속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부산에서 서울로 가야 하는데 부산에서 견성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거다.”

-서울에 가지도 않았는데 부산에서 “다 왔다”고 떠벌리는 이들이 많은가.

“함부로 행세하는 이들이 많다는 거다. 성철 스님의 돈오점수 비판은 차라리 지눌 스님을 겨눈 게 아니라 ‘얼치기들’을 겨눴다고 해야 한다.”

-책 두께가 1000쪽이 넘지 않는가.

“다 읽지 않아도 된다. 천천히 조금씩 읽으면서, 생각해보고 참선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성철선에 3대 종지가 있다. 실제 수행으로 이르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 제2종지 ‘실참실오론(實參實悟論)’이다. 알음알이로는 ‘8부 능선’ 정도까지 이를 수밖에 없다. 언어도단, 비사량처의 무심에 이르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직접 ‘창고’를 열어젖혀야 한다.”

성철 스님이 늘 하던 말이 “내 말에 속지 마라”였다. 말로써는 한계가 있고, 수행으로 말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거였다. 이런 일이 있었다. 돈점 논쟁이 일면서 학계는 성철 스님을 맹렬히 비판했다. 문장 인용에서 곳곳에서 비엄밀성이 발견됐다는 거였다. 강 교수는 “선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성철 스님은 문장을 자유자재로 구사해 당신의 주장을 분명히 한 것”이라며 “그것이 ‘말에 속지 마라’고 하신 성철 스님의 깊은 면모였다”고 했다.

-성철선의 3대 종지는 뭔가.

“제가 정립한 것으로 하나하나가 용맹하다. 우선 제1종지가 ‘돈오원각론(頓悟圓覺論)’이다. 불교는 근본불교-대승불교-선종으로 전개돼왔는데 선종의 돈오(조사의 깨달음)와 부처님의 원각(깨달음)이 같아야 한다는 거다.” 이는 ‘무서운’(?) 말이다. 깨달았다는 기준은 ‘부처님이 되었느냐’에 있다는 거다. 약간의 체험으로 ‘한 소식’했다고 떠벌리지 말라는 거다. 이 삼엄한 기준을 한국 불교계에 던져놓은 이가 성철 스님이라는 거다.

-나머지 종지는 뭔가.

“제3종지 ‘구경무심론(究竟無心論)’은 극미세 망상(아뢰야식)의 심층번뇌까지 다 떨어낸 궁극의 무심에 이르러야 한다는 거다. 이를 위해 3가지 관문을 돌파해야 한다. 동정일여(動靜一如·움직이거나 가만히 있거나 같다) 몽중일여(夢中一如·꿈속에서도 같다) 숙면일여(熟眠一如·숙면 속에서도 같다)가 그것이다. 연후에 아예 수면과 혼절이 없는 오매일여(寤寐一如)로 나아가야 한다.”

과연 오매일여는 가능할까. 다음은 원택 스님이 전하는 말이다. “성철 스님은 29세에 오도송을 읊고 그날 밤 저절로 장좌불와의 용맹정진에 들어가셨다. 그게 매일매일 이어져 밤에 고개 한 번 떨구지 않고 자그마치 10년간이니 계속됐다. 성철 스님은 백일법문에서 ‘항상 여여해서 잠을 잘 때나 깨어있을 때나 근본경계가 조금도 변동이 없는 그것이 실질적인 오매일여’라며 체험에 근거한 사자후를 토하셨던 거다.”

또 이런 일화가 있다. 성철 스님이 사경을 헤맬 때 침상 밑에 꿇어앉은 원택 스님을 향해 퀭한 눈빛으로 “똑같다! 똑같다!”고 했단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니 “옛날 젊었을 때나 장좌불와할 때나, 목숨이 오가는 지금이나 정진이 똑같다는 말이다. 그 말도 못 알아들어?”라고 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성철선의 체계를 설명했다. “1967년 백일법문은 입문이고 1981년 <선문정로>는 이해·실천이고 1982년 <본지풍광>은 견처를 확인하는 것으로 이 셋은 지성적 실천 편이다. 몸의 차원에서는 둘을 제시했는데 삼천배와 아비라기도가 그것이다. 이러한 완성된 체계는 한국 불교사에서 드문 것이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 아닌가”라는 물음에 강 교수의 답은 이렇다. “성철 스님은 원래 우리가 보물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기만 하면 무조건 된다고 하셨다.” 30여 년간 좌선을 해왔다는 강 교수는 “성철 스님을 이해하는 것으로 그쳐선 안 된다”며 “성철 스님 되어보기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한국불교가 늘 새로워져야 한다면, 불교가 사상이면서 그 사상을 넘어서는 수행이라면 <선문정로>에서 그 좌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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