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58. 서평주 ‘예술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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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주(1985~)의 ‘예술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독일어 ‘ARBEIT MACHT FREI’(아르바이트 마흐트 프라이·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를 아치형 네온사인으로 제작한 작품(사진)이다. 전체적으로 붉은 네온사인에서 노동을 뜻하는 단어 ‘ARBEIT’ 중 흰색으로 표현된 중간 알파벳 철자 ‘BEI’를 건너 뛰면, 영어 단어 ‘ART’가 인지된다. 그 순간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문구는 ‘예술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로 달리 읽힌다.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나치 강제 수용소 입구에 걸려있던 문구다. 작품은 노동·자유를 넘어 인간의 개념마저 기만하고 왜곡하며, 비극을 초래했던 역사적 사건과 장소를 소환한다. 그리고 ‘지금 이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예술의 개념과 현상에 대해 묻고, 다시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에 맞서는 예술의 정치성을 표현하고자 한다.

이 작품은 원래 2012년 설치 작품 ‘축하드립니다’의 일부로 처음 발표됐다. 당시 작가는 벽에 걸린 네온사인이 그 아래 페인팅 작업 도구, 방독면, 군용물품, 의사봉 등을 비닐로 싼 쓰레기 더미와 함께 설치했다. 사회경제적이고 문화정치적 구조 속에 포섭되어 있는 예술가가 자신의 노동자성을 각성하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예술 활동을 행할 때, 예술가는 사회가 손에 쥐여준 예술의 도구적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자각을 담았다. 또 그러한 작가 자신의 현실을 자조하는 작품이다.

그 후 2015년 공간힘에서 열린 다섯 번째 개인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이 네온사인은 단일 작품으로 분리되면서 그 외연을 확장해 나간다. 개인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의한 무차별 민간인 학살 사건인 보도연맹사건과 나치 집단학살 수용소 그리고 히틀러에 의해 심미화되는 정치에 대해 다뤘다. 나아가 2015년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까지 교차·연상시키며 과거와 현재, 역사와 부조리, 국가와 개인, 정치와 예술을 한꺼번에 소환하고 사유하고자 했다.

개인전에서 ‘예술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전시장 출입구에 설치되어 관람객은 이 작품을 두 번 이상 보아야 했다. 처음에는 과거에 대한 추적을 통해 역사적 비극을 불러내고 비극 속에서 도구화된 예술에 대해 말하기 위함이었다. 다음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당대 사회와 예술 현상을 환기시키기 위한 것이 되었다. 더 나아가서는 사회역사적 현상과 모순 속에서 예술과 사회를 구해낼 정치성을 회복하는 일이 되기를 작가는 바랐다.

개인전에서 서평주는 동명의 단채널 비디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함께 발표했다. 작품은 검지손가락으로 어느 한 곳을 가리키는 손 모양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구호와 동시에 나치식 경례로 보여지는 손모양으로 변한다. 구호가 끝나면 다시 처음 모습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반복하는 영상이다.

술래잡기놀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게임 규칙상 술래는 벽을 보며 구호를 외치는 사이에는 등 뒤 사람들의 움직임을 볼 수 없다. 작품은 우리가 맹목적으로 현상적 모습(규칙)을 믿고 따르는 사이 우리 뒤에 숨어서 현상을 작동시키는 강력한 국가적 통제와 억압이 숨어든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서평주는 눈앞에 나타난 모든 현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우리의 현실 이해에 재도달하기 위한 예술가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강선주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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