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숨비] 육지 해녀의 시작, ‘부산 영도’ #1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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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숨비’는 제주도 밖 육지 해녀의 대명사인 부산 해녀를 기록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부산은 제주도 해녀들이 처음 출향 물질을 하며 정착한 곳이지만, 지난해 말 기준 60대 미만 부산 해녀는 20명만 남았습니다. 인터뷰와 사료 발굴 등을 통해 사라져가는 부산 해녀의 삶과 문화를 기록하고, 물질에 동행해 ‘그들이 사는 세상’도 생생히 전달할 예정입니다. 제주도 해녀보다 관심이 적은 육지 해녀가 주목받는 계기로도 삼으려 합니다. 이번 기획 보도는 〈부산일보〉 지면, 온라인, 유튜브 채널 ‘부산일보’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지난 1일 오전 10시께 부산 영도구 동삼동 영도해녀문화전시관. 입구 쪽에 테왁 망사리를 짊어진 채 한 손에 까꾸리(호미)를 든 해녀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에 쉐눈(물안경)을 쓴 동상 아래에는 ‘제주 해녀 역사’가 짧게 정리돼 있었다.

영도 해녀촌에 우뚝 선 이 동상은 다름 아닌 ‘제주해녀상’. 2019년 7월부터 자리를 지킨 해녀상은 제주도에서 기증하며 세워졌다. 제주도는 해녀상 아래에 ‘이곳에서 제주 해녀들은 강인한 의지로 삶을 개척하고, 공존과 배려의 제주해녀문화를 꽃 피웠다’며 ‘영도에 100년 넘게 이어지는 제주 해녀들의 도전 정신과 기개를 기리며 제주해녀상을 기증한다’는 글을 새겨뒀다.

2019년 부산 영도구 동삼동 영도해녀문화전시관 앞에 세운 제주해녀상. 제주도가 출향 해녀들의 도전 정신과 기개를 기리기 위해 기증한 해녀상이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2019년 부산 영도구 동삼동 영도해녀문화전시관 앞에 세운 제주해녀상. 제주도가 출향 해녀들의 도전 정신과 기개를 기리기 위해 기증한 해녀상이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영도는 제주도가 해녀상을 세울 정도로 해녀 역사에 특별한 곳이다. 1887년 제주도 해녀가 처음 섬 밖으로 진출해 물질한 곳이 ‘부산부 목도’, 즉 영도구라는 게 통설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영도로 진출한 해녀들은 이후 국내 곳곳뿐만 아니라 해외까지 물질을 떠났다. 국내를 넘어 동북아시아 바다를 누빈 출향 해녀들의 기착지이자 제주 해녀의 새로운 역사를 연 곳이 영도인 셈이다.


■ 영도로 진출한 제주 해녀들

“성산일출 바려두곡 / 소완도로 가는구나 / 완도지방 넘어가근 ~ (중략) ~ 다대끗을 넘어가민 / 부산영도 이로구나 / 이여싸나 이여싸나”

현재까지 구전되는 ‘해녀 노래’의 일부분이다. 해녀들이 돛배를 타고 제주도를 오가거나 먼바다로 노를 저어갈 때 부른 노래 중 하나다. 성산포항을 출발한 해녀들이 완도 일대로 향한 뒤 부산 다대포에 이어 영도까지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여싸나는 ‘어기여차’를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제주 해녀들이 부산 영도를 목적지로 삼은 이유는 해산물이 이동하는 거점인 영향이 크다. 부산은 예전부터 해산물 상거래가 활발한 대표적인 해양 도시이기 때문이다. 1900년대 일제 강점기부터 부산에는 일본 해조 상인과 객주들이 모인 시장이 형성됐다. 해산물을 제공하기 위한 선주와 유통업자도 많았다. 여기에 영도는 바람이나 조류가 필요한 돛배로 이동하기 유리했다는 점도 정착지가 된 이유로 꼽힌다.

제주도에서 부산 영도까지 해녀들이 이동한 경로. 돛배로는 여러 지역을 경유해야 했지만, 동력선과 기선편이 생기면서 이동이 수월해졌다.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제주도에서 부산 영도까지 해녀들이 이동한 경로. 돛배로는 여러 지역을 경유해야 했지만, 동력선과 기선편이 생기면서 이동이 수월해졌다.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제주 해녀들은 영도에 진출하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기도 했다. 1962년 수산업협동조합법 개정 전만 해도 ‘정착 해녀’와 ‘제주도 출향’ 해녀 모두 제도적인 차별은 없었다. 당시에는 모두 입어료만 내면 작업이 가능했다.

하지만 일부 어장에서는 분배 비율을 50%까지 요구하며 해녀들 이익을 가져갔다고 한다. 심지어 해산물을 몸속에 숨겼을지 모른다며 해녀복 안에 손을 넣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부산제주도민회는 1963년 12월 도민회 임원진과 지역 유력 인사들로 구성된 ‘잠수권익 옹호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앞서 1950년 5월에는 제주도민 400여 명이 영도구 남항동 항구극장에 모여 해녀 권익을 찾기 위한 대회를 열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렇게 목소리를 높인 결과 영도 해녀들을 착취하는 행위는 점차 근절되기 시작했다.


■ 영도 해녀의 하루

영도 해녀들은 이른 아침부터 하루를 시작한다. <부산일보> 취재진이 올 3월에만 5차례 이상 관찰한 결과 해녀들은 오전 7~8시부터 물질을 준비했다. 새벽에 하나둘씩 해녀촌에 모여든 해녀들은 고무 해녀복으로 갈아입고 바다로 향했다. 그렇게 물질을 하러 가면 일러도 오후가 돼야 뭍으로 나온다. 채취하는 해산물이나 건강 상태 등에 따라 빨리 일을 마치는 해녀도 있다. 한 해녀는 오전 11시께 무거운 미역을 육지에 올려놓은 뒤 다시 바다로 들어가기도 했다.

이렇듯 해녀들은 이른 새벽부터 억척스럽게 물질을 해왔다. 영도구 동삼어촌계 해녀인 이정옥(67) 부녀회장은 “옛날에는 해녀들이 태풍이 올 때 빼고는 쉬질 않아 이건 아니다 싶어 휴식 규칙을 만들기도 했다”며 “바다 아래 시야가 잘 안 보이는 사리 즈음에 3일씩 쉰다”고 말했다. 사리는 조수 간만의 차가 가장 클 때를 뜻하며 보름달, 그믐달과 시기가 겹친다. 이러한 규칙을 적용하면 한 달에 6일 정도를 쉬게 된다.

제주도 출신이 많은 영도 해녀들은 사투리로 대화하며 물질을 준비한다. 보통 해녀는 혼자 움직이지 않아 물질 전 함께 이동할 바다 방향을 정한다. 종종 필요한 해산물이 무엇인지 이야기할 때도 있다.

“전복도 났네 막 저 뭐허드렌 저저 자갈에 훌근 보말 나서랜” / “어디 그 안에? 매낄락 매낄락한 거” / “먹보말게 먹보말밖에 더 있나게” / “수드리 잡을라고? 고동 막 여왔다더라 요새” / “엉 보말 막 여만”

지난달 20일 오전 7시 30분께 영도 앞바다에 울린 대화다. 해녀 4명은 부산 토박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제주도 사투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금씩 의견이 갈리기도 했지만, 제주도 출신들은 대략 이런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전복도 나왔다더라. 소문에는 저기 자갈에 큰 보말(고둥)이 나왔다더라” / “어디 그 안에? 큰 게 있다고?” / “각시고둥(먹보말)이지. 각시고둥밖에 더 있겠어?” / “작은 고둥 잡으려고?” / “고둥이 요즘 실하다더라” / “응 보말이 실해”

당시 대화를 나눴던 영도구 동삼어촌계 고복화(86) 해녀는 “제주말을 버리지 않고 써도 여기 사람들은 잘 알아먹는다”며 웃음을 보였다.

영도 앞바다에서 테왁에 의지해 물질을 하는 해녀의 모습. 정윤혁 PD jyh6973@busan.com 영도 앞바다에서 테왁에 의지해 물질을 하는 해녀의 모습. 정윤혁 PD jyh6973@busan.com

해녀들은 평소 큰 목소리와 억센 말투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영도 해녀촌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도 웬만하면 싸우는 게 아니다.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라 크게 놀라지 않아도 된다.

마치 다투는 듯한 해녀들의 목소리는 오래 물질한 영향이 크다. 난청이 있는 해녀가 많아 작은 소리로는 의사소통이 잘 안 되기 때문이다. 해녀들은 깊은 바닷속에 잠수를 하다 보면 수압 차이로 귀와 머리 등에 통증을 느낀다. 오래 쉬지 않고 반복해서 바다로 들어가면서 난청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갈등을 막는 화이트보드

영도해녀촌 해녀들은 동삼어촌계 소속이다. 동삼어촌계 해녀들은 감지해변, 태원자갈마당, 태종대 등대, 하리 방파제, 동삼동 매립지 일대에서 물질을 한다. 수확한 해산물은 해녀촌과 시장 등에서 판매한다.

영도해녀촌 한쪽에는 화이트보드가 있다. 여기에는 ‘봉래’, ‘동삼’, ‘청학’이라고 쓰여 있다. 손님을 받을 때마다 번갈아 가며 아래쪽에 획을 하나씩 긋는다. 봉래, 동삼, 청학으로 분류된 해녀 공동체에 손님을 균등하게 나누기 위한 운영 방식이다.


영도 해녀촌에 설치된 화이트보드. 순서대로 손님을 받는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영도 해녀촌에 설치된 화이트보드. 순서대로 손님을 받는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문득 의문이 들 수 있다. ‘동삼’은 동삼어촌계라고 유추가 가능하다. 하지만 ‘봉래’와 ‘청학’은 다르다. 없는 어촌계 이름이기 때문이다. 부산시가 지난해 12월 실시한 공식 조사에서도 영도구 해녀는 동삼어촌계 97명, 남항어촌계 19명으로 집계됐다.

화이트보드에 3개 지명이 쓰인 데에는 사연이 있다. 부산시수협 등에 따르면 영도구 해녀들은 봉래동, 청학동, 동삼동 등에서 각자 활동을 하다가 동삼어촌계로 오래전에 편입됐다. 그런데 이미 별도로 공동체가 형성된 상황이라 해녀촌 안에서도 이를 유지하게 된 것이다. 화이트보드는 억척스러운 해녀들에게 생길 수 있는 갈등을 방지하는 장치라고 볼 수 있다.

2015년 7월 부산 영도구 동삼동 해녀촌의 모습. 영도해녀문화전시관이 지어지기 전까지 이곳에서 장사를 하기도 했다. 부산일보DB 2015년 7월 부산 영도구 동삼동 해녀촌의 모습. 영도해녀문화전시관이 지어지기 전까지 이곳에서 장사를 하기도 했다. 부산일보DB

영도 해녀들은 거주지가 달랐던 만큼 예전에는 판매 방식에도 차이가 있었다. 과거 영도해녀촌은 별다른 건물이나 설비 없이 해녀들이 잡아 온 해산물을 즉석에서 파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그때는 청학동 해녀들이 현재 영도해녀문화전시관 해녀촌 주변에서 판매를 했다.

봉래동 해녀들은 봉래시장 등 인근 시장에 해산물을 많이 팔았고, 동삼동 해녀들은 주로 횟집이나 식당에 물건을 건넸다. 동삼어촌계 주변에 해산물과 미역국 등을 파는 식당이 많은 이유 중 하나다.

영도해녀문화전시과 1층에 만들어진 해녀촌. 이곳에서 해녀들은 해산물을 판매한다. 정윤혁 PD jyh6973@busan.com 영도해녀문화전시과 1층에 만들어진 해녀촌. 이곳에서 해녀들은 해산물을 판매한다. 정윤혁 PD jyh6973@busan.com

해녀가 된 다이버

해녀들은 보통 다이버(Diver)를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마을 어장에 들어와 해산물을 가져가는 일이 빈번해 다이버라면 치를 떠는 해녀도 많다. 그런데 최근 영도구에 등록된 막내 해녀 조미진(51) 씨 직업은 다이버다.

다이버가 해녀가 된 배경에는 ‘환경’이 있다. 20년 넘는 스킨스쿠버 경력이 있는 조 씨는 “지난해 11월 동삼어촌계 해녀로 등록이 됐다”며 “해산물을 잡는 것보다 환경 정화 등에 힘쓰고 바닷속 상황을 촬영해 널리 알리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러한 뜻을 받아들인 기존 해녀들은 그를 ‘아기 해녀’로 받아들였다.

영도 앞바다에서 물질 중인 해녀가 까꾸리를 들고 바닷속을 둘러보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영도 앞바다에서 물질 중인 해녀가 까꾸리를 들고 바닷속을 둘러보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영도구 동삼어촌계 강양석 어촌계장은 “장비를 착용한 다이버들은 훨씬 오랜 시간 동안 바다에 머무를 수 있다”며 “해녀로서 바닷속 문제점을 알리겠다는 뜻을 높이 평가해 기존 해녀들도 마음을 열어준 것 같다”고 말했다. 해녀들도 백화현상 등으로 바닷속 환경이 악화된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조 씨가 대를 잇는다는 점을 환영하고 있다.

영도에 50대 해녀는 조 씨가 유일하다. 지난해 말 기준 116명으로 파악되는 영도구 해녀 중 60대 미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중 신고를 한 해녀는 56명인데 70대 이상이 47명, 60대는 9명이다. 2030 세대가 아닌 40대가 신규 해녀가 돼도 막내가 될 수 있는 셈이다. 고령화가 심해지고 해녀 수는 점차 줄어드는 상황은 영도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발길은 끊이질 않지만…

영도해녀문화전시관 해녀촌은 다양한 매체에 명소로 소개되며 유명해졌다. 특히 영도 앞바다를 보며 김밥 위에 성게알(성게소)을 올려 먹는 장면 등이 SNS에서 많이 회자된다. 성게알은 계절 등에 따라 맛이 다르고 호불호가 있어 맛을 쉽게 평가하긴 어렵다. 다만 영도 바다 전경에 충분한 매력이 있다는 점은 대부분 수긍한다.

영도는 최근 관광지로 떠오른 데다 개발 여파가 이어지면서 다양한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환경에 영향을 미치면서 인근 해역 해조류가 줄어들어 전복 등 다양한 해산물이 많이 감소했다.

영도해녀촌에서 파는 성게알, 해삼, 멍게, 소라 등 해산물. 정윤혁 PD jyh6973@busan.com 영도해녀촌에서 파는 성게알, 해삼, 멍게, 소라 등 해산물. 정윤혁 PD jyh6973@busan.com

해녀촌 공시지가 상승으로 임대료가 올라가는 점도 해녀들에게 부담이다. 해녀문화전시관이 지어지고 진입로가 뚫리면서 맹지였던 땅의 활용 가치가 상승하고, 태종대 연결 해안관광도로 건설 등이 본격화해 인근 부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점이 사용료 상승 원인으로 꼽힌다.

영도구 동삼어촌계 이정옥 부녀회장은 “해녀촌 건물이 생기면서 옷 갈아입을 장소 등이 생겨서 좋은데 임대료가 계속 오르고 있다”며 “고령화로 수입이 줄어든 해녀들의 부담이 더 커질까 봐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영도 해녀 이야기를 생생히 담은 영상은 기사 위쪽과 유튜브 ‘부산일보’ 채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해녀들 인터뷰를 통해 영도 해녀들의 삶과 문화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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