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결의’는 있을 수 없었다? 삼국지 전격 대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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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삼국지 / 최진열

<역사 삼국지>는 ‘삼국지’를 사랑하는 저자가 역사에 근거해 <삼국지>를 1100여 쪽에 걸쳐 철두철미하게 분석한 책이다. 위진남북조시대 권위자인 최진열 박사가 썼다. 모든 관련 사료를 분석했고 200장의 지도로 상세히 밝혔다.

우리가 아는 소설 <삼국지>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다. 이는 명·청 시대의 재미와 맛깔이 많이 들어간 소설이다. 심지어 나관중에 대해서도 자세한 자료가 없어 복수의 인물로 추정하기도 한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유비 관우 장비의 의형제 도원결의는 ‘원천 불가’라고 한다. 도원결의한 유비 고향은 북경 근처로 위도로 볼 때 당시 복숭아나무가 자랄 수 없었다는 거다. 또 세 사람이 친하기는 했으나 당대에 의형제를 맺는 풍속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맹장 중의 맹장 관우는 ‘유비의 의동생’이라기보다 ‘믿음직한 신하’로 보는 것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한다.

최진열 박사, 역사·사료 근거해 분석
직접 그린 지도 200장 통해 상세 설명

정사로 불리는 진수의 <삼국지>도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기록한 역사서가 아니다. 진수는 촉나라 사람이었으나 진나라에서 벼슬을 했기 때문에 위나라와, 위나라를 계승한 진나라에 유리하게 역사를 썼다. 조조를 매우 우호적으로 썼는데 그런 차원에서 조조가 패한, <삼국지>에서 매우 중요한 적벽대전을 0.1% 비중으로밖에 다루지 않았다. 또 후한과 위나라, 위나라와 진나라 교체는 찬탈이었는데 교묘한 필법으로 찬탈의 역사를 ‘정상 역사’로 다뤘다. 이런 연유로 진수의 <삼국지>는 위진남북조와 수당 시대에 이르기까지 찬탈자들의 애용 지침서가 되었다.

저자가 보기에 <삼국지>의 주인공은 조조다. 조조가 화북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지략, 능력, 준비, 선택과 집중에 있었다. 위나라는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촉·오나라 양자를 합한 것보다 더 우세했다. 당시 객관적 판도를 놓고 볼 때 삼국 통일의 대세는 위나라에 있었다는 말이다. 위가 아니라 진에 의한 삼국통일이긴 했으나 화북이 대세였다는 건 결국 판명됐다.

<삼국지>의 일대 전기가 적벽대전이었다. 조조는 눈앞의 중원 통일에 실패했고, 정처 없이 떠돌던 유비는 기사회생의 기회를 잡고 곧 절정기를 맞는다. 그러나 곧바로 곤두박질쳤다. 형주를 빼앗기고 북벌에 나선 관우가 전사한 것이 결정적 전기였다. 유비는 관우의 복수를 위해 오나라 정벌에 나섰으나 이릉에서 크게 패하고 결국 죽음을 맞는다. 그것이 역사가 부여한 유비의 몫이었다.

촉나라와 오나라의 군사력 경제력 인구를 비교할 때 촉은 오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힘의 크기는 객관적이고 대세를 가늠하는 기준이다. 그러나 기회는 누구에게나 오기는 한다. 그 기회 앞에 촉의 유비는 무너졌고, 오의 손권도 더 뻗어나가지 못했고, 조조도 당대에 그것을 완전히 거머쥐지 못했다. 인간이 역사를 만들지만, 그 역사를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기도 하다. 위 촉 오 삼국이 쟁패했으나 결국 사마의-사마염의 진이 삼국을 통일했고, 그 왕조조차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한 것이 역사다. 책 속에 나오는 200장의 지도를 저자가 일일이 그렸다고 한다. 부제가 ‘군웅할거에서 통일전쟁까지 184~280’이다. 최진열 지음/미지북스/1116쪽/4만 3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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