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창의성 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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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진 동명대 유아교육과 교수 창의 인성연구소 소장

컴퓨터 게임에 익숙한 10대 청소년들에게 “고향이란 말을 들으면 어떤 것이 떠오르냐?”고 물었다. 놀랍게도 에란겔, 사녹이라고 답했다는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는 배틀 그라운드 게임에 나오는 놀이터이다. 이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이런 게임 속 놀이터가 고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아동 청소년들의 일상은 모든 것이 온라인에서 진행되었다.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 박기 하는 고향은 이제 더 이상 우리 아이들에게 점점 없어지고 있고, 동네 놀이터에 아이들의 함성은 듣기 힘들어졌다.

100번째 어린이날이 있는 5월에 이 시대 아이들의 놀이에 대해 생각해본다. 코로나로 비대면 수업이나 거리두기가 일상화되면서 아이들은 자기만의 공간에서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나 원하는 대상과 캐릭터와 만나고 놀이할 수 있다. 그러나 영유아기, 청소년기 놀이의 의미는 더욱 적극적인 개념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점수를 획득하는 목표를 이루는 게임이 아니라, 과정에 몰입되어 결과가 어떠할지라도 목표를 달성하는 부담이 없이 모든 것을 집중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놀이가 되어야 한다.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창의성은 ‘재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할 때 만들어지는 결과이다.

많은 디지털 전문가들이 이제는 창의성도 인공지능(AI)에서 구현할 수 있다고 한다. 나의 살던 고향은 마음에서 점점 사라지겠지만, 4차 산업시대 사라질 직업 목록을 보면 창의성과 감성이 요구되는 직업만 살아남는다고 하니, 미래사회 촉망되는 직업군 리스트가 새삼스럽지 않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도, 죽은 예술가를 부활시켜 일상에 소환시킨 ‘넥스트 렘브란트’ 프로젝트도 AI가 해내는 세상이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와 네덜란드의 미술관이 컴퓨터에 “렘브란트 화풍으로 수염 있고 검은 옷을 입은 30대 백인 남자를 그려라”는 명령을 입력하자, 인공지능은 영화, 음악, 미디어에서 자료를 수집해 18개월 만에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심지어 렘브란트 화풍을 그대로 따라 그려서 350년 죽은 화가가 부활했다고 대중들은 찬사를 보내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과거의 것들을 분석해서 천재예술가의 화풍을 기반으로 표현은 가능하나, 새로운 것을 기획하고 연출해서 독창성 있는 창의성을 작품 안에서 구현할 수는 없었다. 앞으로 살아갈 미래 시대는 기계가 하지 못하고 흉내 내지 못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창의성 근육’에 특별한 관심이 더 집중될 것이다. 창의성 근력을 키우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험한 요인을 기꺼이 수용하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실패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실제로 끊임없이 연습해 볼 때 생겨날 수 있다.

인공지능과 메타버스 세상 안에서 같이 성장해 갈 우리 아이들의 창의성 계발에 가장 필요한 것은 놀이하면서 창의성을 시도하는 실패는 아무래도 괜찮다는 문화적 환경과 사회적 시스템이다. 그래야만 다양성과 독창성을 갖춘 창의성 근력이 장착될 수 있다. 이렇게 놀면서 체득한 창의성 근력은 살아가면서 아주 유용하게 우리의 사고와 정신건강을 보장하게 한다. 놀이할 때 작동하는 창의성 근력은 거창한 어떤 진취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하게 그것을 행하는 우리의 놀이가 너무 신나고 재미있기 때문에, 행복하고 기쁜 기분을 기꺼이 느끼게 한다. 창의성이 굳이 새롭고 쓸모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도 창의성에 대한 오해다. 그냥 즐겁게 놀이하다 보면 하나둘씩 나의 사고에 창의성 근력이 자리 잡게 된다. 어제와 다르게 오늘 더 좋은 생각, 더 좋은 감정, 더 좋은 행동으로 자신과 세상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 나가는 능력이 행복한 창의성이다. 몸짱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생각의 힘을 기를 창의적 근력으로 장착된 아이들의 세상을 기대해본다. 오월은 푸르고 우리들은 자란다는 아이들의 떼창이 귓전에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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