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마지막 장면 내가 결정”…연명의료 의향서 150만 명 눈앞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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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 결정제도 도입 올해로 4주년
-임종 환자가 치료 중단 직접 결정 가능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사전 의향서 작성
-지난해까지 115만 명 참여 매년 증가세
-실제 치료 중단 이행 사례도 20만 건 넘어

부산에 사는 50대 L씨는 최근 부친의 입원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지병에 시달렸던 부친은 의식불명 상태였다. 의사는 회생이 불가능하다면서 더 이상 치료는 불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연명의료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L씨는 가족과 상의한 끝에 의사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부친은 이틀 뒤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연명의료 결정제도

연명의료 결정제도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의학적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기간만 늘리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의 연명의료를 받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는 담당의사와 해당분야 전문의로부터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를 받았음에도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에 임박한 상태’라는 의학적 판단을 받은 사람을 의미한다.

2018년 2월 4일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발효돼 연명의료 결정제도가 처음 시행됐다. 제도 실시 4주년을 맞은 올해 3월 말 현재 본인 의사를 미리 밝혀두는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은 123만 5850명을 넘었다. 보건복지부는 의향서 작성자가 올해 중에 150만 명을 넘을 것으로 내다본다.

의향서 작성자는 제도 시행 첫 해인 2018년 10만1773명을 기록해 10만 명을 넘었다. 2019년 12월에는 누계 53만 2667명, 2020년 12월에는 누계 79만 103명을 기록했다. 2021년 8월에는 누계 100만 명을 넘었고, 같은 해 12월에는 누계 115만 8585명을 돌파했다.


보건복지부 류근혁 제2차관이 2월28일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보건복지부 류근혁 제2차관이 2월28일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담당의사와 함께 ‘연명의료 계획서’를 작성한 환자는 3월말 현재 8만 5730명에 이르렀다. 연도별 작성 환자 수를 보면 2018년 1만 4732명, 2019년 2만 701명, 2020년 2만 2079명, 2021년 1만 3643명이었다. 계획서는 말기환자의 의사에 따라 담당의사가 연명의료 중단 결정 관련 사항을 미리 계획해 문서로 작성해두는 것이다.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실제로 이행한 사례는 20만 7544건에 이르렀다 연도별 시행 건수를 보면 2018년 3만 1765명, 2019년 4만 8238명, 2020년 5만 5942명, 2021년 2만 3239명이었다.

우리나라 85세 초고령 인구 비율은 2020년 전 국민의 1.6%에서 2040년에는 5.2%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7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도 2020년 8.7%에서 2040년 18.7%로 급증할 전망이다.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삶을 마무리하면서 자신에게 시행될 의료행위를 스스로 결정하는 인식과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고 밝혔다.


■누가 어떻게 참여하나

전국에서 병원급 이상의 의료 시설 등 329곳이 연명의료 결정제도에 참여하고 있다. 보건소와 의료시설, 비영리법인, 건강보험공단 지소와 국가생명윤리정책원 등 총 503곳의 등록시설이 지정돼 있다. 가까운 등록시설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누리집(www.lst.go.kr)이나 전화( 1422-25/1855-0075)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앞으로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될 경우에 대비해 연명의료에 관한 의향을 문서로 작성해둘 수 있다. 보건복지부로부터 지정 받은 등록시설을 방문해 충분한 설명을 들은 뒤 작성, 등록해야 한다. 의향서 작성에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 신분 확인을 위해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의향서는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에 등록돼야 법적 효력을 갖는다. 의향서를 작성하고 15일이 지난 뒤 연명의료 정보포털을 통해 의향서를 조회할 수 있다. 신분증을 지참하고 가까운 등록시설을 찾아가서 조회할 수도 있다. 의향서를 철회하고 싶을 경우 등록시설을 다시 방문해 의사를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사전 연명의료 계획서를 작성하는 방법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의사 표현 능력이 있는 환자는 원할 경우 직접 연명의료 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다. 대신 담당의사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 의사 표시 능력은 없지만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환자일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이때 사전 연명의료 계획서를 작성하려면 의사 2인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 또 배우자, 직계 존‧비속, 형제자매 2인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이 있어야 한다. 환자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의사 표현 능력이 없고 의사를 확인할 수도 없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환자 가족 전원이 합의해서 의사 2인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보도자료에서 “앞으로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등록 시설을 노인복지관 등으로 확대해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생애 말기 의료 이용 행태를 분석해서 임종 돌봄 진료 권고안을 개발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생애 말기 돌봄 전략을 세울 방침이라는 것이다. 또 의료 시설의 연명의료 중단 활동에 정규 수가를 적용해 참여 의료 시설을 늘리도록 할 예정이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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