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 위험’ 호소하던 사기꾼, 두 달 도피생활 어떻게 가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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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실명 위험을 호소하며 구속집행정지를 요청한 뒤 달아난 50대 여성(부산일보 4월 4일 자 8면 등 보도)은 수사망을 피해 두 달이나 도피 생활을 이어갔다. 사기행각에 거액을 잃은 피해자들은 교정시설과 사법기관의 무책임한 처사에 또다시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18일 부산경찰청과 부산고법 등에 따르면 구속집행정지 기간 도주했다 붙잡힌 사기꾼 A 씨는 경찰 조사를 받은 뒤 지난 16일 부산구치소에 재수감됐다.

수십억 빼돌렸던 50대 재수감
안과질환 진료 받다 병원서 도주
휴대전화·신용카드 흔적도 없어
피해자 “검찰·법원·구치소 책임”

A 씨는 사기 등 혐의로 지난해 11월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부산구치소에 수감됐다. 1심에서 인정된 전체 피해 금액만 57억 원이 넘고, 부산경찰청과 일선 경찰서에서 제각기 조사 중인 다수의 고소 사건을 합하면 사기 피해액은 수백억 원 규모로 늘어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A 씨는 구치소 수감 두 달 만에 안과 질환을 호소하며 입원 치료를 요구했다. 부산고법은 구치소와 검찰의 의견을 토대로 A 씨의 대학병원 입원치료를 허가했다.

부산구치소 측은 “A 씨는 2차 병원에서 진료를 받던 중 3차 대학병원 전원을 안내 받았다”며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대학병원 전문의의 소견에 따랐다”고 밝혔다. 부산구치소 측은 “실명될 수 있는 상태라는 대학병원 전문의 소견이 있었다”며 “A 씨의 진료 기록은 개인정보라 공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A 씨는 대학병원에 입원해 진료를 받다 유유히 사라진 뒤 두 달이나 도주 생활을 이어갔다. 휴대전화, 신용카드, 현금인출 등 흔적을 남길 만한 일상생활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실명 위기에 놓인 것인 맞는다면 조력자가 있었더라도 수사망을 요리조리 피해 두 달이나 잠적하기는 어려웠다고 보인다.

게다가 사기 혐의로 경찰 수사가 진행될 때만 해도 A 씨 시력은 일상 생활에 크게 문제가 없을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피해자는 “경찰 조사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A 씨와 여러 차례 골프 라운딩과 식사 등을 했는데 눈이 나쁘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구치소와 검찰, 법원이 A 씨의 상태를 제대로 살펴봤는지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올해 1월부터 A 씨의 항소심을 심리하던 부산고법 형사2부는 구치소와 검찰의 구속집행정지 신청 의견을 토대로 입원 치료를 허가했다. 주거지를 대학병원으로 제한했으나 도주를 마음먹은 A 씨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현행법상 검사의 석방지휘로 법원이 구속집행정지를 허가한 피고인을 감시할 의무는 어느 기관에도 없다. 심지어 도주한 피고인에 대한 가중처벌 조항도 없어 ‘밑져야 본전’인 셈이다.

제도의 허점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검찰과 법원, 교정기관이 책임을 방기한 사이 대형 사기꾼은 도망쳤고, 큰돈을 떼인 피해자들은 가슴을 치며 분통을 쏟아냈다. 수십억 원을 잃고 고소를 준비 중이라는 한 피해자는 “A 씨가 도망쳤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여기저기 수소문했지만 검찰에 전화하면 법원으로 책임을 돌리고, 법원은 검찰에 문의하라는 식이었다”며 “피해액을 돌려받을 작은 희망마저 꺾일까 봐 매일같이 밤잠을 설쳤다”고 토로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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