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대상 영화 ‘정순’ 정지혜 감독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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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서대 영화과 출신
첫 장편영화로 수상 영예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대상을 거머쥔 영화 ‘정순’의 정지혜 감독. 정대현 기자 hjyun@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대상을 거머쥔 영화 ‘정순’의 정지혜 감독. 정대현 기자 hjyun@

“지역에서 학교를 다니고 지역에서 영화를 하다 보면 아무래도 위축되는 부분이 있잖아요? 수도권과 비교하게 되고요. 부산에서도 충분히 좋은 영화, 좋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게 돼 기쁩니다.”

첫 번째 장편영화 ‘정순’으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대상을 거머쥔 정지혜 감독을 18일 만났다. 부산 동서대 영화과 출신인 정 감독은 “전날 학교 후배들을 대상으로 졸업생 특강을 진행했다”며 “이번 수상으로 큰 성과 하나를 냈다고 보고, 후배들에게도 미리 위축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해줬다”고 말했다.

영화 '정순' 스틸 컷. 시네마루 제공 영화 '정순' 스틸 컷. 시네마루 제공

고향이 경남 양산인 정 감독은 이번 영화의 촬영을 주로 양산에서 진행했다. 코로나19 탓에 장소 섭외가 쉽지 않았는데, 양산의 한 어묵공장이 협조를 해준 덕분에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영화의 주요 배경이 식품 공장이다 보니, 코로나 시국에 섭외 부분이 특히 예민했어요. 제가 대학교 다닐 때 휴학을 하고 7개월 간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거든요. 그 때 경험이 이번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정지혜 감독. 정대현 기자 hjyun@ 정지혜 감독. 정대현 기자 hjyun@

그는 영화 속 ‘정순’과 같은 중년 여성들과 공장에서 함께 일하면서 ‘이모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중년 여성이 디지털 성범죄의 대상이 된다는 영화의 설정 역시 선배의 시나리오 작업을 도운 경험에서 비롯됐다.

“선배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면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됐어요. 처음엔 이게 젊은 세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자료 조사를 하다 보니 영화 속 ‘영수’처럼 가해자의 중년 남성 비중이 높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동네 식품 공장에서 일하는 정순은 이름처럼 정순하게 살아가는 중년 여성이다. 그런 정순에게 공장 동료이자 또래 영수가 다가온다.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지고, 어느 날부터인가 주변 사람들이 정순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영화 '정순'의 촬영 현장. 시네마루 제공 영화 '정순'의 촬영 현장. 시네마루 제공

“정순이 영수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서 영수가 정순과의 만남을 지속적으로 촬영합니다. 그것이 공장의 젊은 관리자를 통해 유포되지요. 영화에는 딸 유진과 정순이 서로 다른 입장 탓에 부딪치는 이야기도 담겨 있어요. 정순이 수동적 자세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어려운 시간을 뚫고 나가는 걸 그렸습니다.”

스마트폰을 남녀노소 모두가 사용하는 시대에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를 젊은 세대만 겪을 거라고 생각한 건 편견이었다. 이런 편견을 깨는 새로운 접근은 정 감독이 앞서 찍은 세 편의 단편영화 ‘버티고’(2019) ‘매혈기’(2018) ‘면도’(2017)에서 보여준 시각과도 상통한다.

“장편영화에 도전하면서 동서대 석좌교수인 임권택 감독님이 대학 시절 특강을 해주셨던 게 생각났어요. 첫 특강 때 장편 데뷔작은 무조건 제일 잘 아는 이야기로 찍으라고 하셨거든요. 그 때 기억이 강하게 남아서 ‘정순’을 찍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영화 '정순' 촬영 현장의 정지혜 감독. 시네마루 제공 영화 '정순' 촬영 현장의 정지혜 감독. 시네마루 제공

영화 ‘정순’은 부산영상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부산에서 기획하고 제작, 후반작업까지 마무리한 작품이다. 2019년도 ‘부산신진작가 영화기획개발 멘토링 지원사업’과 2021년도 ‘부산지역 영화·영상 콘텐츠 후반작업 기술지원 사업’ 지원작에 선정된 바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영화제작지원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영화이기도 하다. 경남문예진흥원의 지원도 받았다. 지역에서 영화 제작을 지원하는 각종 사업이 많아져 이번 영화를 제작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영화는 내년 3월을 목표로 개봉 준비 중이다.

“부산영상위의 멘토링 때 영화 ‘프랑스여자’ 등을 찍은 김희정 감독님이 도움을 주셨어요. 김 감독님이 함께 멘토링을 해준 최정문 감독의 ‘내가 누워있을 때’도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됐어요. 같은 여성 감독이다 보니 세 명이 친하게 지냈는데, 관계만큼이나 결과도 좋게 나와 김 감독님도 좋아하셨어요.”

초반 시나리오 작업 당시 정순의 딸 ‘유진’은 잡지사에서 일하는 설정이었지만, 멘토링을 받으면서 폐차장 경리로 직업이 바뀌었다. 캐릭터 준비가 덜 된 것 같은데, 가까운 사람을 떠올려 보라는 멘토의 제안이 도움이 됐다.

정지혜 감독. 정대현 기자 hjyun@ 정지혜 감독. 정대현 기자 hjyun@

“제 어머니가 실제로 폐차장에서 일하시는데, 정순과 같이 유진이 노동을 하는 캐릭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 촬영도 어머니가 일하시는 폐차장에서 진행했습니다. 어머니가 양산에 살고 계셔서 로케이션 매니저처럼 촬영에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정 감독은 2019년 영화제작사 ‘시네마루’를 만들게 된다. ‘정순’의 촬영감독을 맡았던 정진혁 감독과 함께 부산 수영구의 사무실에서 각자 차기작 준비도 하고 있다.

정 감독은 지역에서 작업하기 가장 힘든 점으로 인력난을 꼽았다. 스태프를 꾸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 타 지역에 가 있는 동문들의 도움으로 이번 영화의 작업 인력을 채울 수 있었다.

“제 경우엔 익숙한 풍경을 배경으로 하는, 제가 제일 잘 아는 이야기를 쓰려다 보니 부산과 경남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어요. 부산이 영화도시라고 하는데, 영화과를 나온 많은 인력이 다른 도시로 가는 게 아쉬워요. 부산에서 작업할 수 있는 환경, 인프라가 더 조성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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