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명칭 유래한 곳은 자성대공원… 오류 바로잡아야”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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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8년 허목이 편찬한 <목장지도> 중 동래부 편. 네모 속은 오해야항 목장성의 중성 부분인데 왼쪽 산은 용두산, 오른쪽 두 개의 산은 천마산과 아미산으로 추정된다. 절영도 부산 다대포 등의 지명도 보인다. 나동욱 제공 1678년 허목이 편찬한 <목장지도> 중 동래부 편. 네모 속은 오해야항 목장성의 중성 부분인데 왼쪽 산은 용두산, 오른쪽 두 개의 산은 천마산과 아미산으로 추정된다. 절영도 부산 다대포 등의 지명도 보인다. 나동욱 제공

“부산지역 성지와 관련한 오류들이 적지 않아요. 그 오류들이 문화재 관련 책자나 학습 교재, 해설 활동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여과 없이 전달되고 있어 문제입니다. 오류가 반복 재생되는 겁니다.”


성곽전문가 나동욱 복천박물관장

‘부산 성지에 관한 추가 검토’ 논문

“배산, 성이 있는 산이라는 뜻”

“토성동의 토성, 목장의 중성 구간”

부산진성 오류 4가지 지적하기도


성곽 전문가인 나동욱 복천박물관장은 그 오류들을 밝혀 〈박물관연구논집〉(부산박물관) 제27집에 논문 ‘부산지역 성지에 관한 추가 검토’를 게재했다.

먼저 배산성(盃山城, 부산시기념물 제4호)의 명칭 유래에 오류가 있다고 한다. 산 형상이 ‘잔(盃, 杯)을 엎어놓은 모양’이라 해서 ‘배산성’으로 이름 지었다는 것은 잘못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성(城)’을 ‘재’라고 했어요. ‘성이 있는 산’의 순수 우리말인 ‘잣산’ ‘잔뫼’가 한자로 표기되는 과정에서 ‘잔’이 ‘배(盃)’로, 즉 ‘배산’이 된 겁니다. 그걸 간과하고 ‘잔을 엎어 놓은 모양’이라고 한 거지요. 명칭에서는 한글과 한자를 오가는 내력을 잘 봐야 합니다. ‘잣산’→‘자산’으로도 불리면서 한자로 ‘자’를 뜻하는 ‘척(尺)’을 가져와 1740년 〈동래부지〉처럼 ‘배산’을 ‘척산(尺山)’이라고 적은 것도 있어요.”

다음으로 토성동 토성이 신라와 가야 때 성이라고 하는 설도 오류라고 한다. 〈부산지명총람〉, ‘부산역사문화대전’, 도시철도 ‘토성터’ 안내판 등 거의 모든 곳에서 그렇게 언급하고 있다. 가야 신라 때 토성에서 ‘토성동’ 지명이 유래했다는 것은 거의 통설에 가깝다.

그러나 나 관장은 “토성동 토성은 조선 전기 태종 16년(1416) 이전에 충무동에서 사하구 낙동강 지역까지 축조한 조선 전기 오해야항 목장의 중성(中城) 구간에 해당하는 성”이라고 바로잡았다. 오해야항 목장 성곽은 1678년 허목이 편찬한 〈목장지도〉에 잘 나와 있다. 정확하게 외성, 중성, 내성이라는 3개의 목장 성곽이 그려져 있으며, 〈목장지도〉는 그 길이를 60리로 기록하고 있다. 그중 중성, 즉 문제의 토성은 충무동 해안까지 연결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나 관장은 실제 지표조사를 통해 사하구 당리동~괴정동~서구 아미동에 걸쳐 있는 중성의 성벽을 확인했다. 동주대(괴정동) 동북편 골짜기에는 성벽이 3m 높이까지 잔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토지리정보원 1950년 항공 사진에서 중성 성벽으로 보이는 융기선도 확인했다.

그런데 토성동 토성이 흙으로 축조했다는 점에 대해서 나 관장은 “평지에서 석재를 구하기 힘들어 흙으로 쌓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또 일제강점기 기록의 ‘반월형 토성’과 관련해서는 “산 쪽에서 바다 쪽으로 내려오면서 성벽이 꺾였을 수 있고, 성벽에 덧댄 목장 관련 시설의 흔적일 수 있다”고 했다.

그다음 나 관장은 부산진성과 관련한 오류 4가지를 해명하고 있다. 나 관장은 이미 ‘자성대 산’이 ‘부산’ 명칭이 유래한 산이라는 주장을 펼친 적이 있고, 이는 나름의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선 1974년 부산진성(자성대) 정화공사 때 범한 2가지 오류를 밝혔다. 하나는 현재의 동문 현판 ‘건춘문(建春門)’은, 궁궐인 경복궁 동문의 이름으로 격이 다른 부산진성 동문의 이름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1974년 정화공사 때 기록도 ‘이름을 알 수 없어 새로 건춘문이라 하였다’고 ‘얼렁뚱땅’ 적혀 있다. 나 관장은 원래 이름을 찾아냈다. 1895년 〈영남진지(嶺南鎭誌)〉를 보면 ‘부산진성 동문은 진동문(鎭東門)’이라 명백히 기록돼 있다는 것이다. 1643년 조선통신사 종사관 신유도 〈해사록〉에 부산5절(絶) 중 ‘진동문’을 꼽고 있다. 부산진성의 잘못된 동문 현판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성대공원 위의 장대 ‘진남대(鎭南臺)’도 남문 이름을 잘못 가져다 붙였다는 것이다. 역시 〈영남진지〉에 ‘승가정(勝嘉亭)은 자성 위에 있다’는 기록을 찾아냈다. 이에 비춰 지금 건물은 ‘정자’가 아닌 ‘대(臺)’로 복원돼 있기 때문에 ‘진남대’는 ‘승가대’로 명칭을 변경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나 관장은 변박 ‘부산진순절도’의 오류로 인해 조선 전기부터 부산진성을 내·외성 2개 성 체제로 보는 것은 오류이며, 18세기 중엽 증산을 ‘부산고기(釜山古基)’라 기록한 것은 ‘부산진성의 터’라는 뜻인데 ‘부산의 터’로 잘못 이해됐다는 주장을 펼친다. ‘자성대 산’이 ‘부산’ 명칭이 유래한 산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변이다. 또 발굴조사를 통해 동래의 왜성인 ‘증산성’이 충렬사 뒤편 망월산 동장대에서 충렬사에 이어져 있었다는 것과, 안락교차로 부근에 그 지성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도 밝히고 있다.

나 관장은 “명백한 오류는 고쳐야 하는 것”이라며 “부산 명칭이 유래한 곳은 현재의 자성대공원이라는 것을 부산 사람으로서 널리 알리고 싶다”고 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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