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거품 사회를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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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수 신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1980년대 초 ‘도쿄를 팔아 미국을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본은 이 시기 선진국이 가장 부러워하는 나라였다. 1980년대 중반 많은 돈이 부동산과 주식에 폭풍처럼 몰려들었고 거품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거품은 급격히 빠지고 부동산은 구매 금액의 평균 33%까지 폭락했다. 은행 채권의 90%가 휴지 조각이 되어 금융권 연쇄 도산으로 치닫게 되었다. ‘버블 경제’의 타격으로 이후 일본은 저출산, 고령화, 낮은 혁신경쟁력 등과 겹치며 ‘잃어버린 30년’을 경험하고 있다.

거품 경제는 투기 등으로 실물 경제 성장 이상으로 자산 가격이 상승하는 상황이나 가치의 명목적 평가가 실질 가치보다 과도하게 평가 절상된 상태를 의미한다. 부동산, 주식, 실물 자산 모두에서 발생할 수 있는 거품 경제는 거품이 빠지면서 자산 가치뿐 아니라 생산, 일자리, 살림살이까지 심각한 타격을 입힌다. 지난 몇 년 동안 수도권 부동산 가격의 급상승이나 소득 대비 높은 주택 가격 비율 등이 부동산 거품의 대표적 예이다. 거품 경제는 지대 추구(rent-seeking) 경제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지대 추구란 정상적 기회비용 이상의 대가를 추구하는 것으로서 우리나라 재벌의 정경 유착, 생산보다는 토지 보유 이득 추구,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생산·유통에서의 약탈적 지배 등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난다.

일본, 버블 경제 붕괴 후폭풍 지속
서울 부동산 가격 급상승 우려 수준
수도권 집중화 지방 약탈적 지배

한국 정치는 거품 사회 주역
양대 거대 정당, 민심 대변 못해
주권자 참여 정치로 심판 나서야


거품 사회와 지대 추구의 지배 구조는 수도권 집중화에서 나타난다. 1960년대 인구 20.6%에 불과했던 수도권은 60년 만에 인구의 절반, 핵심적 부의 80% 이상을 빨아들이게 되었다. 결정적 고리는 서울 소재 정치의 집권적 권력 운영, 기업 본사 일극 집중, 수도권 입지라는 독점 지대방식의 전국적, 전(全)사회적 관리이다. 비수도권 주민이 더 많이 불입했던 주택기금까지 수도권 1, 2기 신도시에 갖다 썼고, 동일한 방식으로 천문학적 개발이익이 예상되는 3기 신도시까지 진행되는 실정이다. 낙후 지역 발전에 들어갈 지역균형발전 예산까지 포함된 수십조 예산의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는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과 막대한 개발이익을 수도권과 소수의 개발업자들에게 안겨 주게 될 것이다.

거품 사회 현상은 교육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막대한 사교육비를 국민들이 지출하지만 학생 행복도는 물론 교육 성과도 낮은 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 진학률에도 우리나라 고급기술(비반복인지노동) 인력의 직무급 비중은 25.2%로 OECD 상위국 평균 50%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4년의 대학 과정과 각종 스펙 쌓기의 긴 교육 기간에도 청년 취업률은 낮고 4차산업 등 대전환기에 필요한 인력수급 대응력도 낮은 실정이다. 특히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대학 격차는 거품 현상의 결정판이다. 비수도권 대학이 수도권 대학에 비해 1인당 도서 등 교육환경 지표가 훨씬 나은 편이고 교수 1인당 논문 수에서 비슷하거나 앞서지만 수도권 대학으로 학생들이 더 몰리고 1인당 교육비 및 연구비는 매우 낮은 실정이다. 국민의 삶에 중요한 사회보장 영역은 보건의료인데 이곳의 거품도 심각하다. 국민건강보험의 공적 관리체제 속에서 민간을 통해 의료서비스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전 국민의 75%가 가입한 실손보험은 비급여의 과도한 확대와 국가 의료비의 낭비적 지출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거품 사회를 촉진하거나 억제하는 지렛대는 정치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치야말로 거품 사회 주역이다. 양대 거대 정당은 지지율에 비해 과대 대표되고 있고, 대선 전에는 위성정당을 통합하여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가치를 팽개치고 말았다. 문재인정부는 북핵 위기 속에서 출범하여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 K-방역을 통한 팬데믹의 성공적 대처, G10급 경제성장 및 국제위상 제고에도 불구하고 전환기 국가혁신을 위한 도약판 정책 마련이 미흡했다. 촛불시민혁명의 가치를 좁은 정파적 이익 속에 가두어 두었으며 결국 재집권에 실패했다. 0.73%P의 표차로 집권한 윤석열정부의 정책 비전은 대전환기 한국의 절박함을 담기에 매우 빈약하고 연대와 통합의 의지가 미약하여 위험한 거품 정치로의 이동이 우려된다.

우리의 인식에 거품을 걷어 내야 거품 사회와 지대 추구 사회의 위험도는 줄어든다. 정책과 인물에 대한 꼼꼼한 검토 없이 ‘힘 있는 여당 후보론’, ‘일당 지배 견제론’, ‘진영논리’, ‘맹목적 지역주의’, ‘세대 편향’, ‘성차별과 혐오’ 등에 기반한 ‘묻지마 식 투표’야 말로 거품이 지배하는 선거이다. 지방자치의 주역을 뽑는 지방선거일이 내일로 다가왔다. 부산시청과 각 구·군청이 개발업자들의 탐욕적 사업 구상과 정치꾼들의 시대착오적 야망에 점령당하지 않으려면 결국 주권자의 진정한 참여 정치가 관건이 된다. 거품을 걷어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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