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총기로 쪼개진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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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국 미국이 자국 내 총기 난사 사건으로 어지러운 모습이다. 세계의 리더국으로서 지구촌 ‘감초’ 역할을 자임하는 미국이지만, 정작 나라 안의 해묵은 난제는 한 발짝도 진전이 없는 게 모순적이기까지 하다.

최근 미국의 총기 난사 사건은 외국에서 볼 때 기이할 정도로 잦고, 그 피해자도 대상을 가리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지난 24일 초등생 19명을 포함한 21명이 희생된 미국 텍사스주의 초등학교 참사 이후에도 미국 전역에서 비슷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지 언론은 텍사스 사건 뒤에도 최소한 14건의 총기 난사가 더 발생해 10명이 숨지고 61명이 다쳤다고 한다. 이쯤 되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총기 난사 사건이 일회성이 아니라 상시화했다고 보는 게 나을 듯하다.

최첨단 문명을 자랑하는 미국에서 가장 반문명적이고 비인간적인 ‘묻지 마 난사 사건’이 빈발하면서 ‘미국에 갔다가 재수 없으면 총 맞을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미국 내 여론은 들끓고 있다. 그런데 그 갈래가 두 가지로 정반대다. 총기 규제 강화와 허용 확대의 전혀 다른 목소리가 팽팽하다. 건국 이후부터 뿌리내린 미국 총기 문화의 두 측면이다.

이 논란은 현직 대통령인 바이든과 직전 대통령인 트럼프의 정면 대결로 전선이 극명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총기 규제를 위해 “뭐라도 하라”라는 시민의 요구에 “그럴 것이다”라며 규제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교사가 무장했다면 이런 참극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총기 소지가 확대돼야 한다고 맞불을 놨다. 총기 규제 현안을 보는 미국 사회의 복잡다단한 측면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장면이다.

사실 미국 내 총기 문제는 매우 정치적인 사안이다. 헌법상 보장된 무기 소지 권리를 어느 한도까지 제한할 수 있느냐는 미 국민 사이에서도 치열한 논쟁거리다. 그러나 연간 살인 사건 중 약 80%(2020년)가 총기로 인한 사망이라는 건 미국의 치부가 아닐 수 없다. 비교적 총기 사고가 잦다는 캐나다(37%)나 호주(13%)와 비교해 봐도 월등하다.

바이든 대통령의 말처럼 지금 미국은 뭣이라도 해야 할 지경이지만, 그 해법을 정치적으로 찾기가 어렵다는 게 딜레마다. 잇단 총기 사고가 최강국 미국을 점점 분열의 수렁으로 이끄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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