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바다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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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호(1963~ )

늘 누워있기만 하던 바다가

어느 날에는 산처럼 일어나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



나는 바지 속에 두 손을 넣고

어린 성기를 만지작거리며

참을 수 없는 호기심으로

그 심연을 올려다 보았다



너울나비

그 깊은 우물 속을 항해하는

정어리 떼 같은 은빛 울음으로



-나는 영영 알 수 없을 슬픔에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다


-시집 (2021) 중에서


읽히는 시가 있고 들리는 시가 있다. 이 시는 들린다. 노래처럼. 신화와 우주적인 세계를 탐구해 온 이 시인은 ‘누워 있는 바다’를 일어서게 하고 그 심연을 올려다 본다. 너울나비 같은 물결, ‘정어리 떼 같은 은빛 울음’의 바다 윤슬을 보며 시인은 바다의 시원과 바다의 슬픔을 노래한다. 바다에서 나고 자란 시인이 숙명처럼 바다를 노래할 때 새삼 시가 말놀이가 아니라 노래였음을 깨닫는다. 노래와 춤이 없는 민족이 없듯이, 인류는 노래와 춤을 통해 가혹한 역사를 이겨왔고 잊어왔다. 코로나의 끝없음으로 노래와 춤을 잊은 지 오래, 시를 읽다보니, 노래방에 가고 싶어졌다. 이대로는 못살겠다.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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