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의 지금 여기] 투표가 행복을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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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그 옛날에도 정치란 것은 고역으로 여겨졌나 보다. 고대 중국의 제왕 시절인 요순시대 얘기다. 요 임금이 기력이 쇠해 더 이상 일을 하기 힘들었던지 허유라는 사람에게 임금의 지위를 넘겨주려 했다. 이 말을 들은 허유는 펄쩍 뛰었다. 못 들을 소리를 들었다며, 임금 노릇은 절대 못 한다며, 냇물에 귀를 씻고 또 씻었다는 것이다. 그 냇물 이름은 ‘영수’다. 이를 지켜본 허유의 친구 소부는 한술 더 떴다. 허유가 귀를 씻어 더럽혀진 물을 소가 먹을까 봐 아예 소를 냇물 상류 쪽으로 끌고 가서 마시게 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기산’이라는 산에 들어 평생을 은거하며 지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나온 고사성어가 ‘기산영수(箕山潁水)’ ‘소부허유(巢父許由)’다. 물론 최고 존엄의 자리조차 거부했던 옛 은사들의 높은 기개를 상찬하는 말이지만, 정치 혐오의 태도를 보여 주는 상징적 사례로 읽어도 무리가 없다.

정치 혐오, 동서고금 막론한 현상
지금도 여전히 대의 민주주의 불신

당리당략에 갇힌 지방선거 큰 문제
주민이 자기 지역의 진짜 주인 돼야

삶을 변화시킬 최후의 수단은 투표
싫은 걸 바꾸기 위해서라도 행사를


동서고금을 펼쳐 봐도 사람 사는 모습이 크게 다를 리는 없는 것인지, 지금도 정치를 싫어하고 정치인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21세기를 훌쩍 넘긴 현대는 옛날의 왕조 시대와 달리 국민들이 선거권을 갖고 있는 민주주의 시대다. 그런데도 정치 혐오가 여전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국가와 지역사회를 이끄는 리더들의 모습이 기대에 한참 못 미친다는 뜻이다. 지금은 정치를 하는 사람, 행정을 맡은 사람, 민의를 대변하는 사람을 지역 주민이 직접 뽑는다. 그런데 유권자의 노력이 들인 공에 비해 결과가 별로 신통치 않은 것이다.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라고들 한다. 민주주의는 저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같다는 비유가 있다. 눈앞에서 아름답게 반짝이지만 결코 손에 잡히지 않는.

이번 지방선거로 눈을 돌려 본다. 여당이니 야당이니, 진보니 보수니 하는 프레임에 갇힌 선거 구도가 여전함을 알 수 있다. 지방선거에서는 지역 발전과 비전을 어떤 후보가 가장 잘 실현하고 구현할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후보들이 개인적인 정치 셈법이나 소속 정당의 당리당략에 휘둘리면 그런 건 뒷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선거전이 치열해지면서 득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태가 어김없이 나오는 것이 그 방증이다.

선거운동 기간 후보들에게서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이 있다. “민의를 받들겠다”는 다짐이다. 하지만 번지르르한 말로 그칠 뿐이다. ‘공약 코스프레’가 공해가 된 지 오래다. 당선 뒤 지역 주민들의 뜻을 도외시하고 독불장군의 길을 걸었던 씁쓸한 사례는 얼마든지 많다.

공자는 요순시대의 핵심을 이렇게 짚었다. “요순이라는 성인 정치가들은 나라가 어려울 땐 언제나 꼴 베는 나무꾼에게 의견을 묻고 그들의 뜻에 따르는 정치를 했다.” 요순시절이면 박하게 계산해도 지금으로부터 무려 4000여 년 전이다. 이 까마득한 시절에 이미 태평성대를 누린 비결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나라의 주인은 백성, 고쳐 말하면 지역의 주인은 지역 주민이라는 사실. 2022년 지방선거 후보들이 이를 뼈저리게 깨닫지 못한다면 출마 자격이 없다. 민의를 위임받아 위정(爲政) 하는 일은 한 치의 빈틈도 허락되지 않는 무거운 책무다. 꼴 베는 일꾼들과도 의견을 나눌 정도로 우리 사회의 가장 낮고 후미진 곳 구석구석까지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은 6·1 지방선거 본 투표일. 유권자들의 눈은 저런 자질과 경륜과 지혜를 두루 갖춘 후보들을 골라내는 데로 향해야 한다. 누차 말했듯이, 아직도 많은 사람이 대의정치에 대한 불신 때문에 투표 행위에 회의적이다. 물론 국민들에게 식상함만 안기는 정치 탓이 크다.

그래도 우리 삶을 바꿀 최후의 수단은 정치요 투표일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위정자를 뽑아 올바른 정치로 이끌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 나라가 존재하고 주민들의 살아갈 길이 열리겠나. 투표는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다. 아니, 싫은 걸 바꾸기 위해서라도 해야 한다. 자기 권리를 행사하지도 않으면서 이 땅의 주인임을 내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국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 수전 제이코비가 이런 말을 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무감각해져 있거나 무지할 경우 잘 작동하지 않는다.”(<반지성주의 시대>) 그는 미국에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원인을 진단하면서 무지와 맹목을 지목했다. “무지는 좌·우파를 가리지 않는다”고도 했다.

문제는 선택이다. 정확히 말해서, 그것을 뒷받침하는 유권자들의 안목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후보 선택의 최고 기준은 진정성과 실행 능력이라고 본다. 말 바꾸기나 마타도어, 편 가르기, 지역감정 조장, 기만적인 정치공학 따위가 통하지 않는 시대임을 보여 줘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공동체의 미래를 원하는가. 유권자가 답할 시간이다.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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