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권의 핵인싸]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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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나의 물리학 강의 첫머리는 항상 우리가 경험하는 공간으로부터 시작한다. 아스라이 보이는 별과 은하의 거시세계부터, 우리가 직접 경험하긴 어렵지만 엄존하는 미시세계에 이르기까지, ‘크기’에 대한 느낌은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키 자랑을 한다고 해도, 결국 우리는 1~2m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미터-생명체’다. 거구의 킹콩이 우리의 열 배만 크다고 가정해도 몸무게는 1000배가 될 것이므로, 그 몸집을 견디기 위한 다리는 100배쯤 굵어야 한다. 그렇게 생긴 생물은 아무리 생각해도 킹콩의 모습을 하기 힘들다. 공룡이 비대칭적으로 엄청난 두께의 다리를 갖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거꾸로 밀리미터의 세상에 살고 있는 벼룩은 무게가 ‘미터-생명체’의 10억 분의 1에 불과하므로, 가늘어 보이지만 상대적으로 엄청난 근육질의 다리로 굉장한 높이까지 뛰어 오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절대적인 ‘크기’가 그 세계의 물리적 현상을 결정한다.

자연은 이질적인 것들의 균형 상태
일부 세력이 세상 중심처럼 보여도
사회 수준은 오늘의 ‘우리’가 결정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모든 화합물의 가장 작은 알갱이를 ‘분자’라고 한다. 이 분자의 크기가 대략 나노(10억 분의 1)m다. 그래서 분자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을 ‘나노기술’이라고 부른다. 물체를 다루는 모든 기술의 궁극적인 끝이다. 더 정교한 기술은 있을 수 없다. 얼마 전 동료 연구자에 의해 네이처에 게재된 ‘녹슬지 않는 구리’에 대한 연구가 있었다. 나노기술로 정렬한 구리 분자 사이에 산소 분자를 체계적으로 증착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인류 기술의 신기원을 보여 준 것이었다. 현재 온 세계가 경쟁하고 있는 반도체 기술은 물론, 우리가 지난 2년간 거의 매일 보아 온 코로나 바이러스의 이미지도 모두 이 나노기술 덕분이다. 분자를 다룬다는 것이, 젓가락이나 칼과 같은 어떤 기구라도 이용하는 것처럼 오해돼서는 곤란하다. 그 어떤 것이 분자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있을까. 우리 인류는 기술적으로 그 어느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물체의 근원적인 세계에 도달해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분자는 결국 여러 원자들의 결합인데, 각 원자들은 속이 텅 빈 솜사탕과 같다. 잘 보이지도 않는 가느다란 설탕 섬유들을 막대기로 저어 붙잡아 놓은 게 솜사탕이다. 원자는 텅 비어 있으면서도, 핵 주위를 미친 듯이 움직이는 전자들로 꽉 차 있다. 핵은 원자보다 수만 배나 작아서 보이지도 않는다. 솜사탕은 엉켜 있는 설탕의 양에 따라 크기와 가격만 달라지겠지만, 원자와 분자는 그 안에서 미친 듯이 돌아다니고 있는 전자들의 개수와 움직임에 따라 그 원자 및 분자의 모든 성질이 결정된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은 전자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점 입자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이 이 글을 보고, 읽고, 생각하고, 머릿속에 감정이 일고, 행동하는 모든 것은 전자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색깔과 형태는, 입사한 빛이 물체 분자들의 전자구조에 반사되거나 간섭되는 것이며, 우리의 감각은 실제로는 감각을 이루는 생체 분자의 전자와 물체 분자 내 전자의 충돌이고, 우리의 두뇌는 전자로 인한 전기신호의 집합체다.

물론 이 세상엔 전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크기는 작지만 원자 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돼 있다. 전자는 그 자체로 크기가 없는 점과 같은 기본입자이지만, 핵을 이루는 양성자와 중성자는 크기가 있으며, 내부에 더 작은 ‘쿼크’라는 기본입자들로 구성된 구조를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전자는 너무 가벼워서 전기적으로 쉽게 분리시키거나 덧붙일 수 있는 반면 양성자나 중성자는 전자보다 약 2000배나 무거운 입자로, 함께 핵을 구성하고 있어서 핵반응을 통해서만 변화될 수 있다. 대부분의 핵은 전자구름으로 둘러싸인 원자 내에만 존재하므로 서로 반응하기 어렵다.

핵과 전자가 결합해서 전기적으로 중성인 원자가 처음 형성된 것은 아마도 우리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한 지 약 40만 년쯤 지나 섭씨 수천 도 정도로 식은 후다. 이는 보다 안정적인 형태를 지향하는 자연스러운 진화다. 즉 세상은 같은 동질의 것들이 똘똘 뭉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이질적인 것들이 짝을 이루어 존재한다. 또한 질량의 대부분이 핵에 집중돼 있지만 결국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바로 전자다.

원래 자연적인 상태란 이질적인 것들(심지어 전혀 반대인 것들)이 함께 균형을 이룬다는 것이다. 또한 세상이 몇 사람들에 의해 좌우되고 우리 각자는 돌아가는 모든 것들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아서 좀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실제 사회를 이루며 그 성격과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지금도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아닐까 한다. 바다 냄새를 머금은 매력적인 부산의 초여름날, 나는 그렇게 또 열심히 투표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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