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로 대 웨이드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1969년 미국 텍사스주의 노마 맥코비는 성폭력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며 낙태 수술을 요구하다 거부당하자 임신 중절을 금지한 텍사스주법의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1973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 소송에서 낙태를 처벌하는 법률이 미 수정헌법 14조 사생활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미 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 이야기다. 맥코비는 ‘제인 로’라는 가명을 사용했고 지방검사장이 헨리 웨이드였는데 원고와 피고의 이름을 따 ‘로 대 웨이드’ 사건으로 불린 것이다.

이 역사적 판결로 반세기 동안 미국 여성의 ‘낳지 않을 권리’가 보장됐다. 그러나 ‘로 대 웨이드’의 운명은 순탄치 않았다. 보수 단체를 중심으로 낙태 반대운동이 지속됐고 선거와 대법관 지명 때마다 이슈가 됐다. 맥코비조차 원하지 않았던 아이를 낳았고 기독교로 개종해 낙태 반대운동에 앞장섰다. 그러나 그녀는 죽기 직전 인터뷰에서 낙태 반대운동 단체들에 돈을 받고 그런 것이며 낙태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고 밝혀 또 한번 논란을 일으켰다. 미국에서 생명권(pro-life)과 낙태권(pro-choice) 중 어느 것이 우선하느냐는 여전히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가장 논쟁적 주제다.

우리의 경우 헌법재판소가 2019년 4월 17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단을 내렸고 2021년 1월 1일부터 낙태한 여성과 이를 도운 의사를 처벌하는 법의 효력이 상실됐다. 그러나 낙태를 허용하는 임신 기간 등 구체적 적용에 대한 대체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입법 공백 상태다. 최근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도 10대 청소년들의 임신과 낙태 문제가 등장해 드라마의 호평과는 별개로 논쟁거리가 됐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 배우 송강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긴 ‘브로커’도 낙태와 베이비 박스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미 연방대법원이 24일(현지시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공식 폐기하고 주별로 낙태 금지가 가능하도록 판결했다. 미 대법원의 보수화로 예견된 측면이 있지만 49년 역사의 시계추를 되돌리는 결정으로 충격파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대법원이 저지른 비극적 오류를 바로잡는 유일한 길은 연방법으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복원하는 것이라며 11월 중간선거 이슈로 던진 상태다. 국내 낙태죄 소송에 참여했던 한 변호사는 현실적 문제 때문에 윤리적 문제를 저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윤리의 강조보다 현실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을 남겼다.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어디쯤 서 있을까. 강윤경 논설위원 kyk93@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