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전기료 vs 전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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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전기료’보다 ‘전기세’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어감도 다르고 말이 내포하는 의미도 차이가 있지만, 전기세라는 말은 여전히 일상에 살아 있다. 전기세는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실려 있는데, ‘전기료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돼 있다.

그러나 전기료와 전기세의 차이는 엄연하다. 전기료는 말 그대로 전기를 사용하는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요금이다. 개인이 필요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면서 값을 치르는 것과 같다. 반면 전기세는 전기 세금이다. 개인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게 아니라 세금처럼 돈을 내는 데 강제성이 있다. 세금은 국가나 지자체가 강제로 걷는 돈이기 때문이다.

이러고 보면 전기료가 더 적합한 표현처럼 보인다. 전기가 하나의 상품임은 분명하고, 요금도 내가 사용한 만큼만 지불한다는 측면에서는 전기료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간단하고 명료하긴 한데, 우리나라에선 이를 딱 부러지게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먼저 떠오르는 점은 상품임이 분명함에도 전기를 소비자가 선택해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로지 한전만이 전기를 팔 수 있고, 소비자는 여기서만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다. 가격 체계도 정부가 사실상 결정권을 쥐고 있다. 판매자인 한전이 자의적으로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좌우된다.

여기다 세금 체계에서만 볼 수 있는 누진제가 적용되는 점도 독특하다. 한전이 적자를 내면 궁극적으로 정부가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이를 감안하면 우리나라 전기 가격 체계에선 전기세라는 말이 갖는 의미를 완전히 부정하기가 어렵다. 전기의 공공성이 특히 강조되는 사정상 전기 가격은 전기료와 전기세라는 두 측면을 모두 지니고 있다고 이해하는 편이 낫겠다.

정부가 7월부터 올해 들어 두 번째로 전기 가격을 올렸다. 국민의 주름살이 더해질 전망이다. 지난 4월에 이어 3개월 만인 데다 오는 10월에도 또 인상이 예정돼 있어 다른 공공요금에 미칠 영향이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한전의 현재 적자 폭이 매우 심각하고 유가 급등까지 겹치면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니,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가격 결정 과정에서 피동적 입장에 놓여 있는 국민이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착잡하기만 하다. 그럴 때는 정말 전기세가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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