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서 찍은 덕분에 ‘헤어질 결심’ 더 잘 살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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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 화상 인터뷰

박찬욱 감독이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최근 열린 영화 ‘헤어질 결심’ 시사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은 영화 만들기 좋은 도시예요. 이번 작품도 부산에서 촬영해 참 좋았습니다.”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거머쥔 박찬욱(59)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그에게 칸 트로피를 안긴 신작 ‘헤어질 결심’을 ‘영화의 도시’ 부산서 촬영해 더욱 의미 깊었단다. 최근 화상으로 만난 박 감독은 “부산에서 촬영한 덕분에 이야기를 더 잘 살릴 수 있었다”며 “개인적으로 부산에서 일하는 걸 참 좋아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칸 트로피보다 관객 평가가 중요”
29일 개봉 앞두고 뒷이야기 공개
기존 작품과 결 다른 멜로 영화
정훈희 ‘안개’가 영화의 출발점
부산 23곳서 촬영하며 좋은 기억

29일 스크린에 걸리는 ‘헤어질 결심’은 한 남자의 추락사를 수사하는 담당 형사 ‘해준’과 남자의 아내인 ‘서래’가 만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지난달 귀국 후 “칸의 트로피보다 관객 평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 그가 ‘마침내’ 신작을 관객에게 선보이게 됐다. 박 감독은 “그간의 작품과는 결이 다른 영화로 돌아왔다”며 “고전적이고 우아한 사랑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영화 속 두 사람의 관계를 보고 있으면, 관객은 감정의 바다에 던져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후반부로 가면 두 남녀의 말 못 할 사랑이 파도처럼 밀려와 객석을 덮친다. 감독은 “영화적 기교나 화려한 볼거리가 없는 순수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배우의 연기와 카메라 샷 등 영화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요소로 깊은 감흥을 끌어내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두 남녀의 뒤로 펼쳐지는 배경은 인물의 감정을 한껏 끌어올린다. 극 중 범인을 쫓아 비탈길을 뛰어 올라가는 해준의 모습이나 두 사람이 산에 올라 진심을 이야기하는 장면 등이 대표적이다. 자세히 보다 보면 낯익은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박 감독이 2020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를 비롯해 금정산, 한국해양대학교, 기장 도예촌 등 스물세 곳에서 촬영을 진행한 덕분이다. 감독은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2부와 구별되는 곳으로 부산이 적합했다”며 “서울 사람인 해준이 멀리 떨어진 곳으로 와 있는 점도 부각할 수 있었다”고 했다. “부산엔 산과 언덕, 그리고 바다가 있잖아요. 영화 만들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죠. 음식도 맛있어서 부산에서 일하는 걸 정말 좋아합니다. 하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2000)로 스타덤에 오른 박 감독은 그간 주로 청소년 관람불가등급 영화에서 인간의 욕망과 사랑, 복수 같은 진폭 깊은 감정을 강렬하게 표현해 왔다.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로 이어진 복수 3부작과 ‘박쥐’(2009) ‘아가씨’(2016)가 대표적이었다. 이번엔 다르다. 15세 관람가를 받은 신작은 작정하고 만든 박 감독표 멜로영화다. 그는 “자기 욕망에 충실하면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려고 노력한 사람들의 로맨스”라며 “인생을 살아 본 사람만이 이해 가능한 사랑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은 끊임없이 자제하며 에둘러 말하지만, 대화나 눈빛 등으로 전해지는 감정은 관능적인 느낌을 준다. 감독은 “에로틱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배우에게 특별히 주문한 건 없다”며 “그럼에도 관객이 그렇게 느끼는 건 사랑과 관심 같은 감정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성적인 즐거움까지 유발하는 걸 알려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생각하면 무엇하나 지나간 추억/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바람이여 안개를 걷어 가다오/아~ 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안개 속에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

영화 말미 흐르는 노래 ‘안개’는 사실 이번 영화의 출발점이었다. 박 감독은 “모든 것은 정훈희 씨의 ‘안개’라는 노래에서 시작됐다”며 가사를 음미하면서 영화를 켜켜이 쌓았다고 했다. 여기에 주연 배우 탕웨이와 박해일을 대입해 구체적인 서사를 펼쳐 나갔단다. 그는 “탕웨이를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더 장난기 있고 고집스러운 면도 있었다”며 “한국어 대사를 조사 하나까지도 의도를 담아 연기하는 걸 보고 감탄했다”고 했다. “모두 배우들이 잘해 준 덕분이에요. 탕웨이와 박해일 두 사람이 없었다면 시작조차 못 했을 작품입니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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