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서구 고서들을 통해 본 17~19세기 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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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1천 권의 조선 / 김인숙

‘바람과 풀들이 울음을 내는 동안, 그녀의 몸속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들린다.’ 1913년 장로교 목사인 남편과 함께 조선의 순천에 왔던 플로렌스 크랜. 그녀는 어린 두 자식을 낯선 나라, 순천의 들판에 묻었다. 자식이 죽어도 철마다 아름다운 것은 기어코 아름다운가, 순천 들판에 물었을지 모른다. 소설가 김인숙은 ‘보는 것만으로 황홀한 책’이란 소제목에서 다룬 크랜의 ‘조선의 꽃들과 민담’이란 책에 대해 이렇게 작가적 상상력을 펼친다. 대학에서 식물학을 전공했고 동시에 재능 있는 화가였던 크랜은 조선의 꽃들을 그린 책을 출판했다.

크랜의 책 소개는 <1만 1천 권의 조선>에서 다룬 마흔여섯 권 중 한 권이다. ‘Korea’, ‘Corea’, ‘조선’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나라와 관련된 한 글자만 들어 있어도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 명지-LG한국학 자료관. 김인숙은 1만 1000여 권의 한국학 자료들이 소장된 이 도서관에 초대되어 수많은 서양 고서를 만나면서 이 산문을 준비했다.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스웨덴어와 같이 다양한 서구의 언어들로 기록된 이 고서들은 17~19세기 한국학 연구에 있어 중요한 사료들로 손꼽히지만 정작 대중들에게는 낯설다. 이 고서들 가운데 크랜의 책처럼 아름다운 것만 있는 건 아니다. 막연한 환상이나 오류가 담긴 것도 한둘이 아니다. 저자는 이 모든 구부러지고 빗겨나간 정보들을 있는 그대로 소개한다.

또 한 가지 저자가 공을 들여 소개하는 부분은 이 서양 고서들이 가진 물성 그 자체다. 이 책은 120여 장에 가까운 고서 사진들을 담고 있다. 김인숙 지음/은행나무/440쪽/2만 2000원.

이준영 선임기자 g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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