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평범성’에 매몰되지 않고 차이 수용하는 사회로…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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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난민이 되다/황은덕

〈한나 아렌트, 난민이 되다〉는 청소년 철학소설이다. ‘악의 평범성’을 말한 20세기 정치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1906~1975)와 난민 문제를 연결해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청소년들의 늠름한 모습을 그렸다. 한나 아렌트는 독일 출신의 유대인으로 그 자신이 18년 동안 무국적 난민이었다고 한다.


18년 동안 난민이었던 한나 아렌트

차별 없는 세상 만드는 청소년 모습 담아


2018년 한국에서 예멘 난민 500여 명의 국내 수용 문제를 두고 찬반 논쟁이 떠들썩하게 벌어졌을 때 국내의 한 중학교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란 출신의 중학생이 난민 불인정 판결을 받자 같은 반 친구들이 발 벗고 나선 것이었다. 실제 중학생들은 판결문을 꼼꼼히 읽고 토론하고 거리로 나가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소설은 중학생들의 감동적 미담을 바탕 삼았다.

한나 아렌트를 가져온 소설은 두어 가지 주제어와 메시지를 전한다.

첫째 ‘행위’가 중요하다. 이 소설은 난민 친구(라일라)를 위해 반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행위’를 그려 나간다. 그 행위는 ‘토론과 논의를 통해 서로의 입장과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으로서 한나 아렌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정치 행위’다. ‘정치’는 고대 그리스 폴리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각자 의견을 조정해 나가는 과정 자체를 말하는 거다.

둘째 ‘우정’을 새롭게 생각해야 한다. 청소년들의 적극적 행위의 바탕에는 우정이 있었다. 한나 아렌트는 우정을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정의했다. “다른 상황에 놓여 있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대화하면서 차이를 좁혀 가는 과정이 우정이라고 했어.”(63쪽) 아렌트는 우정을 훨씬 폭넓게 이해한 거다. 요컨대 한나 아렌트는 “인간과 인간이 주고받을 수 있는 최고의 가치가 우정이라고 믿었다”는 거다.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면서 살아가는 게 한나 아렌트의 사상이었다면 그가 말한 ‘악의 평범성’과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아돌프 아이히만은 괴물이나 악마가 아니었다. 외려 상관의 지시를 성실하게 수행한 평범한 관료였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데 아이히만은 스스로 ‘사유하고’ ‘판단하고’ 의견을 주고받는 ‘말하는’ 능력을 내팽개쳤다는 거다.

‘악의 평범성’에 매몰되지 말고 저마다 사유 판단 말의 능력을 높이면서 차이를 수용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거다.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갖는 것이 ‘복수성’이고 ‘인간의 조건’이라는 것이 한나 아렌트의 핵심 사상이다.

소설에서 중학생들은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우정’과 ‘정치 행위’의 차원에서 난민 문제와 한나 아렌트를 연결시켜 연극을 만든다. 그 연극에서 난민 한나 아렌트가 그의 엄마와 주고받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그 사람들이 우리 같은 사람들을 도와주는 거냐?” “네 선량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어요.” “알았다. 그럼 서두르자.” “자! 이제 출발해요, 엄마!” 부산의 황은덕 소설가가 썼다. 황은덕 지음/탐/268쪽/1만 2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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